담장 밖의 낙엽, 담장 안의 희망
새로운 세상의 일상 생활
"모두 기상!" 정확히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한창인 시간이 되면 우렁찬 기상 소리가 특호실부터 들려온다. 잠이 덜 깬 수감자들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모포를 갠다. 이곳의 아침은 자유가 아니라 '점검'으로 시작된다. 줄을 맞추고 정자세로 앉아 교도관의 발소리를 기다리는 시간, 1평의 고요 속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간밤에 잘 잤습니까?" 철창 사이로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안부. "네, 아무 일 없었습니다. 차렷! 번호." "하나, 둘, 셋... 번호 끝! 보고자 외 6명입니다."
1호부터 12호 방까지, 약 30분간 29동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이 번호 소리는 우리가 사람이 아닌 '관리 대상'임을 일깨워주는 신호탄이다.
죄인 아닌 죄인이 주는 한 끼의 식사
7시, 철제 배식구가 덜컹거리며 열린다. 늘 맛없는 음식이었지만 생존을 위해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배식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총을 들지 않기 위해 감옥을 택한 '여호와의 증인' 종교인들이다.
키가 제일 작은 배식 담당 김 씨는 나를 '목사 형님'이라 부르며 활짝 웃어주곤 했다. "목사 형님, 잘 주무셨습니까?" 살벌한 구치소에서 마주하는 유일한 환대. 그들은 재소자의 죄명만 봐도 형량을 맞추는 달인이었지만, 30cm 남짓한 배식구 사이로 국자를 밀어 넣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2885, 성경책에 쓰인 나의 이름
아침 식사 후엔 면회객이 넣어준 책을 읽는다. 어느 날, 아내가 보낸 성경책이 도착했다. 첫 장을 펼치자 파란색 매직으로 적힌 '2885'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 왼쪽 가슴에 덩그렇게 달린 번호와 같았다.
바깥세상의 이름은 지워지고 오직 숫자로만 불리는 삶. 그 서글픈 동질감을 느끼며 오후 2시 운동장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매일 사형수들을 만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을 사는 그들에 비하면, 1년 안에 나갈 수 있다는 나의 처지는 사치스러운 희망일지도 모른다.
담장을 넘지 못하는 기도의 방향
11월 초, 찬바람에 뒹구는 낙엽들이 담장 너머로 흩어졌다. 인생의 올무에 걸린 채 차가운 감방에 던져진 나의 삶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이곳에서 높은 담을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무릎을 꿇는다. 기도의 방향은 늘 내가 섬기던 교회를 향했다.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고 기도했듯, 나 역시 마음의 창을 열고 간절히 엎드린다.
"주여, 속히 이곳을 벗어나게 하소서."
어느 때보다 간절한 기도가 차가운 시멘트 벽을 타고 흐른다. 탈출은 불가능해도, 새벽을 깨우는 침묵의 기도 소리는 담장을 넘어 자유롭게 훨훨 날라 멀리 내 가족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