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와 나무아미타불!
감방에서 터진 찬송가와 관세음보살의 전쟁
12월 첫 주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료인 깐돌이 태영이가 나에게 제안했다.
"형님요, 이번 돌아오는 주일은 우리 동 전체 합동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교도소는 주일 날 자기가 믿는 신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여긴 없어서요.“
그는 이 예배를 18동 전체가 들을 수 있도록 '예배를 확장하자'라고 나를 부추겼다. 나는 공식적인 예배가 없어 문제가 생길까 망설였지만, 이미 한방에서 지내는 재소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교회에 갈 수 없는 주일 오전 11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논이 모였고, 예배 인도자는 나의 몫이 되었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주석도 없이 오직 성경만 읽고 감동이 오는 말씀으로 설교를 해야 했다. 나는 목사도, 전도사도 아니었다. 억지로 설교를 하라고 등을 떠미는 상황이었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거룩한 부담'처럼 느껴졌다. 그날 주일은 6호실 우리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12개 방에 수용된 모든 재소자와 함께 예배를 드려야 했다. 잘못하면 규율 위반으로 독방(특실)에 끌려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할렐루야! 와 나무아미타불!
특히 우리 6호실 바로 옆 5호실에는 1998년 겨울, 조계종 폭력 사건으로 잡혀 들어온 젊은 스님들(사실상 주먹 세계의 해결사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뉴스가 될 만큼 시끄러웠던 사건이었다. 총무원장의 3선 연임 문제를 둘러싸고 종단 내 세력 간의 갈등이 극도로 심각했고, 반대 세력은 종정 스님의 교시를 명분으로 총무원 청사를 무력으로 점거했었다. 폭력과 유혈사태는 스님들이 각목, 쇠파이프 등을 동원하여 충돌이 악화 되면서 청사가 불타고 다수의 사상자가 생긴 일이다. 자비와 깨달음이 불교의 핵심이지만 당시에는 욕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만 보였다.
이러한 폭력 사태의 일부분으로 집단으로 잡혀 온 스님들이 바로 옆 5호실에 입감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고, 운동시간에 운동장에서 만나면 조심을 했다. 늘 그들은 훈련으로 단련된 단단한 근육을 나타내며 위압감을 조성하기도 했었다.
정각 11시, 나는 일어나 철장에 다가갔다. 긴 호흡을 한 번 하고 마른 입술을 열고 큰소리로 외쳤다.
”각 방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광고합니다! 오늘은 주일, 일요일입니다. 비록 몸은 여기 있지만, 교회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처럼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묵도와 기도 후, 나는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 나의 방 '성도(?)'들이 잘 따라 했다. 찬송 소리가 커야 긴 복도를 타고 1호실부터 12호실까지 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였다. 바로 왼쪽 옆방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새끼들아. 조용히 해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오른쪽 9~10호 방향에서 "할렐루야! 계속 예배합시다!"라고 몇 명이 소리쳤다. 순식간에 "관세음보살 우~!" 와 "땡중들아, 예배 방해하지 마라!" 는 소리가 뒤섞이며 감방 전체가 시끄러운 논쟁의 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