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하나 없는 성탄
선물도 특식도 없는 성탄절
온 세상의 축제, 우리에겐 증폭된 슬픔 12월, 구치소의 차가운 복도에도 성탄절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물론 캐럴 소리나 반짝이는 트리는 없었지만, 밖에서는 온 세상이 위로와 축복을 이야기하는 절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수감자들에게 성탄절은 단절된 슬픔을 증폭시키는 날이었다. 대다수가 나처럼 IMF의 쓰나미에 휩쓸려 사업에 실패하거나, 절박한 상황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경제사범들이었다.
IMF는 우리에게 실패는 개인의 잘못이라는 혹독한 낙인을 찍었고, 구치소의 차가운 벽돌은 그 국가적 절망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밖의 세상은 무너졌고, 안의 세상은 갇혀 있었다.
휠체어를 탄 회장님과 이름 없는 죄인들 1997년 초부터 시작된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는 12월 3일, 대한민국 전체를 IMF 관리 체제라는 국난으로 몰아넣었다. 서울구치소에 들어온 이들은 그 혼란 속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여기까지 밀려온 사람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의무실에 가면, 한보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흰 마스크를 낀 채 오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대기업 회장이나 이름 없는 사업가나, 이 거대한 시대의 비극 앞에서는 모두가 무기력한 수감자일 뿐이었다.
떡 하나 없는 성탄, 눈물의 찬송가,
성탄절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흔한 떡 하나, 성탄 선물 하나 배달되지 않는 그저 평범하고 시린 겨울 하루일 뿐이었다. 그 특별하지 않음이 오히려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밖에서는 당연했던 축제가 담장 안에서는 지독한 정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 6호 방에서는 성탄 예배를 조용히 드렸다. 찬송가 123장 ”저 들 밖에 한밤중에”를 불렀다. 깐돌이가 선창을 하며 한 번 더 부르자고 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꾹 참고 예배를 인도했다. 깐돌이와 막내도 눈시울을 붉혔다.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저 불빛 중 하나는 내 가족의 집일 터 성탄절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한 희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없는 단절과 고독의 무게만을 더했다. 밤이 되어 차가운 벽에 기대어 창밖의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았다. 저 불빛 중 하나는 분명 내 가족이 있는 집일 터였다. 가족들은 아버지 없이 맞이하는 이 성탄절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이 성탄절은 나에게 예수의 탄생보다, 나의 고난과 이 시대의 슬픔이 얼마나 깊이 엮여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가장 암울했던 그 시절, 감옥 안의 성탄절은 우리에게 조용한 소명을 던져주었다.
"내가 세상의 빛이니, 너희도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