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동의 새해 아침
정부미보다 못한 밀가루 떡국
1월 1일, 새해 아침. 배식구(식구통)를 통해 들어온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뽀얀 떡국이 아니었다. 맹물 같은 국물에 불어 터진 밀가루 떡 몇 점이 떠 있는, 생경하고 맛없는 떡국 한 그릇이었다. 쌀 대신 밀가루로 빚은 떡은 씹을수록 퍽퍽했고, 방 안의 수감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떡국이라며 투덜거렸다.
“우리나라는 쌀이 넘쳐나는데, 정부미로만 만들어도 이것보단 낫겠네. 왜 하필 밀가루로 만들었는지……”
막내 성호는 투덜대면서도 배가 고팠는지 그릇을 금세 비웠다. 하지만 나는 반도 채 넘기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 떡국이 넘어가지 않았다.
“형님, 왜 안 드십니까?” 막내의 물음에 대충 대답하고는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높은 창살 너머, 여자 수감 건물이 보였다. 건물을 망연히 바라보다 이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소리 내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다. 밖에서는 떡국 한 그릇을 나누며 새해의 희망과 위로를 이야기하겠지만, 이곳의 떡국은 차가웠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칼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족들 생각에 목이 메어 도저히 그 떡국을 삼킬 수가 없었다.
삼키지 못한 그리움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은 출소일이 하루 더 가까워졌다는 희미한 위안인 동시에, IMF의 차가운 그늘 아래 또 한 해를 시작해야 한다는 무거운 형벌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 맛없는 떡국처럼, 씁쓸하고 보잘것없는 현실을 억지로 씹어 삼키고 있었다.
진정한 새해는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 아닐 것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내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짊어질 책임이 그만큼 더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담장을 넘어 세상으로 나가는 날보다, 내 안의 절망과 실패라는 벽을 먼저 허무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진짜 새해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차가운 떡국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한 그날, 나는 굳은 결심 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듯, 단순히 세월의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나이를 먹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실패의 파편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소명을 향해 걷는 '새사람'이 되겠노라고 차가운 감방 안에서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