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가장 낮은 한글 교실

6호실의 기적

by 임래청
"야, 너 정말 한글을 몰라?"

대한민국의 한복판, 그것도 중학교까지 졸업했다는 젊은이가 자기 나라의 글자를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 세상에 글씨를 모르는 청년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럼 너는 매일 나랑 한글 공부를 해야겠다. 알았지?" 그는 대답했다. "네, 형님이 가르쳐주시면 열심히 공부해서 감방에서 나갈 때는 한글을 읽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간절한 열망이 담긴 외침이었다.


가장 낮은 한글 교실

글씨를 모르는 박 씨를 만난 것은, 이 구치소 생활에 주어진 가장 의미 있는 일거리였다. 사실 그의 죄명보다 더 불쌍했던 것은 세상과의 소통 창구를 잃어버린 그의 영혼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놀림을 받았을까' 하는 애처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아픈 과거를 묻지 않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좁은 감방 바닥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교실이 되었다.


내가 그에게 글자를 가르쳤지만, 사실은 그가 나에게 더 큰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그의 노력은 육체는 가둘 수 있어도 정신의 해방은 막을 수 없다는 강한 메시지였다. 나는 그가 불러주는 마음을 담아 가족들에게 편지를 대필해 주었다. 답장이 오면 6호실의 모든 수감자가 그 편지를 통해 세상의 온기를 함께 나누었다.

이곳에서 글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었다. 소통의 다리였고, 희망의 씨앗이었으며, 재기(再起)의 약속이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어느덧 스스로 글씨를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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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글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었다. 소통의 다리였고, 희망의 씨앗이었으며, 재기(再起)의 약속이었다. 다행히 그는 내가 출소하는 날까지 6호실에 머물며 내 곁을 지켰다. 우리는 매일 좁은 상을 마주하고 앉아 'ㄱ, ㄴ, ㄷ'을 쓰고 읽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눈빛은 달라졌다. 무기력하고 어두웠던 눈동자에 '앎'의 즐거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출소할 때쯤, 그는 어느덧 스스로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성경 구절을 더듬더듬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한 인생을 코칭하다

흔히들 감옥에 가면 더 나쁜 범죄 기술을 배워 나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박 씨만큼은 6호실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한글'이라는 가장 고귀한 날개를 달았다. 그가 글자를 깨우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본 것은, 내 구치소 생활에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었다.

내가 출소하던 날, 그는 환한 미소로 나를 배웅했다. 이제는 대필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감사 인사를 내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번데기가 허물을 벗듯, 한글이라는 날개를 달고 조만간 세상 밖으로 날아오를 그를 위해 나는 마지막까지 진심으로 기도했다.


이 경험이 훗날 캄보디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희망을 전하게 될 소명의 '예행연습'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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