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인생의 마지막 웃음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미소

by 임래청
인생의 마지막 웃음

20여 년 전 일이다. 서울 시립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공연 요청이 왔다. 병실에 들어서면 대개 3개월 이내에 자리가 비워진다는 사연 깊은 곳이었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환자 병실과 바로 마주 보고 있는 임종실이었다. 공연 준비를 마친 그곳엔 담당 의사와 간호사 몇 명뿐, 무대는 텅 비어있었다.

병실 안에는 여섯 명의 환자가 허리와 머리를 겨우 기댄 채 누워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그곳에서 나는 인생의 마지막 웃음이라는 주제로 무언극 마임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의 막바지, 음악에 맞추어 커다란 하트 풍선을 입으로 불었다. 그리고 환자들을 한 사람씩 돌아보며 물었다.

1559142553597.jpg 매년 영국에서 사용하는 포스터


이 풍선을 꼭 받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저요!” 유난히 까만 얼굴에 깡마른 몸을 가진 한 젊은 환자가 손을 들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풍선을 건네고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그때 알지 못했다.

사흘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하트 풍선을 받았던 그 환자가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가족들은 암이 진단 후 2년 동안 한 번도 웃어본 적 없던 아들이 공연 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함께 울었다는 고마움을 전해왔다. 풍선을 품에 안고 떠난 이는 다름 아닌 젊은 전도사였다. 인생의 마지막 웃음을 전하려 했던 그 사랑은 그렇게 누군가의 마지막 생명을 따뜻하게 보듬었다.

나는 단지 웃음의 씨를 뿌리고 사랑의 물을 주었을 뿐이지만, 그 짧은 찰나에 한 영혼의 생애를 가장 찬란한 미소로 꽃피우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다.


실로암의 치유


낯선 땅, 캄보디아의 길모퉁이마다 생소한 풍경이 칼날처럼 다가오던 첫날을 기억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방인인 나를 경계했고, 사방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이 적막한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쇠창살 같던 언어의 장벽 앞에 서니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경험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성경 속 실로암 못으로 향하던 소경의 심정을 이해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오직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의지해 발을 내딛던 그 절박함 말이다. 그런데 경이로운 반전이 일어났다. 입술의 말이 막히자 비로소 마음의 언어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투박한 손길과 서툰 미소, 그리고 진심을 담은 눈빛만으로도 굳게 닫혔던 빗장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20240702_172757.jpg 매년 6월 큰 전도 행사에 우리 부부를 초청해 주는 영국 교회 스티븐 목사 부부

사랑은 가장 깊은 상처를 먹고 피어난다는 역설을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우리 부부를 무너뜨린 원인이었던 사람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는 것, 이보다 더 놀라운 치유가 또 있을까? 미움이 할퀴고 간 자리에 용서의 근육을 채우는 일은 이제 이곳에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이방인의 눈동자 속에서 문득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찰나, 나는 비로소 실로암에서 눈을 뜬 자가 되었다.


38731b22c1c2463559d82fbe3114cb91_1533721015_0158.png 우크라이나 초청 공연

죽어가는 환자에게 마지막 웃음을 전했던 그 사랑의 씨앗을, 이제 이 캄보디아 땅에 온 맘 다해 심고 싶다. 상처의 골이 깊을수록 생명의 박동은 더 선명하게 울리는 법이다.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다시 내딛는 발걸음마다, 죽어 있던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푸른 숨결이 내 온몸으로 전해온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