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황당한 환영식

호텔에서 강제로 쫏겨나다

by 임래청
40개국을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캄보디아는 나에게 미소 대신 ‘강제 퇴실’이라는 황당한 첫인사를 건넸다.”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뚝뚝이에 실려 나간 자존심은 씨엠립의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내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아직 정착할 집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우선 시내의 작은 호텔에 10일간의 예약을 마치고 여장을 풀었다. 낯선 땅에서의 사역을 꿈꾸며 캐리어 네 개에 가득 담긴 짐들을 하나둘 정리할 때만 해도, 우리 앞에 펼쳐질 앞날이 이토록 황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투숙 3일째 되던 날, 호텔 측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이틀 동안 다른 호텔로 옮겼다가 다시 오세요.”

귀를 의심했다. 호텔 내의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멀쩡히 투숙 중인 손님에게 짐을 싸서 다른 호텔에 가서 자고 오라니. 나는 즉시 항의했다. “이보세요, 우리는 정식으로 예약을 마쳤습니다. 40개국을 여행했지만 생전 처음 겪는 일입니다. 이유가 뭡니까?” 하지만 호텔 측은 막무가내였다. 합당한 이유는커녕 무조건 낮 12시까지 방을 비우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정오가 지나자 로비는 중국인 단체 손님을 태운 대형 버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때 한 직원이 내 방으로 들이닥치더니, 아침에 미리 싸두었던 캐리어 네 개를 번쩍 들고 1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사실상의 강제 퇴실이었다. 우리는 쫓겨나듯 호텔 문을 나서 호텔 측이 준비한 뚝뚝이에 짐을 실었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임시 숙소로 향하는 뚝뚝이 위에서 나는 솟구치는 분노와 비참함을 눌러야 했다.


스크린샷 2026-02-24 155628.png 캄보디아 교통수단 뚝뚝이

더 기가 막힌 것은 곁에 있던 이의 태도였다. 예약을 도와주었던 선교사가 내 옆에 있었지만, 그는 이 상식 밖의 상황에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은 채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선교사님, 어떻게 얘기 좀 해주세요.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간절한 내 요청에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목사님, 여긴 캄보디아잖아요. 원래 다 그래요.”

그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함께 항의하며 내 편이 되어주기는커녕, 비상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권면은 나를 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었다. 뚝뚝이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 자존심도 바닥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쳤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중국 단체 손님 40여 명을 다 받으려니 방 하나가 부족했고, 만만한 개인 투숙객인 우리 부부를 밀어낸 것이었다. 호텔 측에 손님은 인격적인 사람이 아니라 방 개수를 채우는 숫자에 불과했다.

거칠고 황당한 환영식이었다.


아내와 나는 임시 숙소에서 짐을 풀지 않았다. 다음 날 바로 시내를 뒤져 우리가 살 집을 찾아 나섰고, 원래의 호텔로는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이 캄보디아가 우리 부부에게 건넨 거칠고 황당한 환영식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것은 호텔의 횡포가 아니라 주님이 준비하신 낮아짐의 입학식이었음을. 40개국을 누비며 대접받던 ‘베테랑 문화 사역자’의 계급장을 떼어버리라는 주님의 강권적인 손길이었다. 캄보디아는 내게 미소 대신 거절을 건네며 물었다. “너는 이곳에서도 너의 명성과 경력을 의지하겠느냐, 아니면 짐짝처럼 취급받는 이 낮은 자리에서 나만 바라보겠느냐.”


덜컹거리는 뚝뚝이 위에서 우리부부는 깨달았다. 이곳은 내가 사역을 해주러 온 곳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철저히 깨어지고 다시 태어나야 할 죽음의 자리임을 말이다. 척박한 현실이 던진 그 첫 질문 앞에, 나는 비로소 선교사라는 자부심을 내려놓고 캄보디아의 붉은 흙먼지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날의 비참함은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시련의 시작이었지만, 동시에 내 영혼이 가나안의 진짜 거민으로 거듭나는 신성한 통과의례였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