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휠체어 위의 회장님과 사형수의 고무신

사형수와의 만남

by 임래청
차가운 족쇄가 그들의 죄의 무게를 상징하는 듯했다.

정체된 시간 속에서 가장 기다려지면서도 무거운 시간은 오후 2시 운동시간이었다. 대략 50m 길이에 폭이 20m 정도인 흙 운동장을 빠른 걸음으로 빙빙 돌았다. 그때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즉 사형수들을 만났다.

일반 재소자들은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 있지만, 사형수들은 운동시간에도 수갑을 찬 채 포승줄에 묶인 채 운동장에 나와 햇볕을 쬔다. 그들의 삶은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에 희망이 없는 잿빛 얼굴이었다. 대부분 한 번의 참지 못하는 화 때문에 살인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들 대부분은 누군가 면회를 왔다고 하면 극도로 긴장을 한다고 했다. 면회장으로 가는 길이 수년간 다니던 그 길과 갑자기 달라지면 사형수들은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춘다고 했다. 면회장으로 가는 그 길이 사실은 사형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어떤 사형수는 걷지 못해 끌려가기도 하고, 오줌이나 대변을 옷에 싸기도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운동장을 돌던 깐돌이가 "형님요, 이 분을 위해 기도해 줍시다" 하면서 나를 붙들고 한 사형수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못내 싫은 표정을 내지 않고 온순하고 잘생긴 사형수에게 다가가 짧게 기도를 해 주었다. 홧김에 부부 싸움을 하다가 아내를 죽였다는 그는 깊이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였다. 외모와 상관없이 사형수들에게 수갑과 포승줄은 운동시간에도 절대 풀어주지 않았다. 그 차가운 족쇄가 그들의 죄의 무게를 상징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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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의 아이러니와 사형장의 전설

나는 매일 운동장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인 채 나오는 사형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살인 행위는 각각 달랐지만, 순간의 분을 참지 못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공통된 이야기였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큰 형벌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구치소가 유난히 사형수들이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없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서울구치소는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사형 시설을 갖춘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형 집행이 가능한 시설이 있는 이곳으로 사형이 확정된 흉악범들이 이감되어 집중적으로 수용되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등의 국제 인권 단체는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없는 국가를 실질적 사형폐지국(Abolitionist in Practice)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2007년 이 지위에 올랐다. 즉, 사형 제도가 존재하지만 27년 이상 집행을 하지 않고 있어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들은 사형장의 전설은 음산했다. 사형장에 끌려갈 때는 대부분 삶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겁에 질려버린 것인지 잘 걷지를 못한다고 하였다. 축 늘어진 몸으로 교도관들이 질질 끌고 가다시피 한단다. 어떤 사형수는 가다가 멈추고 흰 고무신을 벗었다가 다시 그 고무신을 신으려고 한 발짝 뒤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단 1초라도 더 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마지막 발악과 같은 행동이란다. 어떤 이들은 바지에 대변까지 싸면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교도관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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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면 그 음산한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고 재소자들이 전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하는, 구치소 내에 떠도는 슬픈 전설일 뿐이었다.


휠체어 위의 회장님

"야, 깐돌아, 저기 그 유명한 대치동 OO 아파트 건설했던 회장 아니야?” ”네. 형님 맞습니다. 돈이 있으니 저렇게 여기서도 대접받고 사는 데 우린 이게 뭡니까? 다음에 들어오게 되면 몇백억 징박아 놓고 와야지….“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의료 진료소에 가는 날, 나는 또 다른 특권층 재소자들을 만났다. 긴 복도에서, 강남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던 유명 회장과 다른 경제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휠체어를 타고 있었으며, 얼굴은 흰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것은 구치소 내에서 일종의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장치였다. 다른 재소자들이 그들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을 보면, 사회에서 회장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회장이었다.


돈 때문에 은행 고객 돈 200억을 해 먹으려다가 잡혀 온 김 선생은 이 모습을 보고 다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돈이 좋은 거야. 저들은 변호사가 매일 번갈아 가면서 특별 면회 오면 좋은 접견실에서 온종일 지내다가 감방으로 돌아오니 살만하지. 그래서 여기도 돈이 최고야.“

그들은 평범한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고, 거의 독방(특실)에서 혼자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매일 변호인들이 찾아와 종일 접견(接見)을 하고 가기 때문에 다른 재소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감 생활이었다.


구치소라는 평등의 공간에서도 절망적인 차별은 존재했다. 사형수는 수갑이 채워진 채 죽음의 공포 속에서 햇볕을 쬐지만, 돈 많은 죄인은 휠체어와 마스크를 이용해 병을 '연기'하며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 죄의 유무를 따지기 전에, 여전히 돈과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의 축소판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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