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행 비행기와 아내의 비밀
어디서보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
오후 2시 운동시간이면 김포 공항이나 인천 공항에서 여객기들이 소리를 내며 구치소 위로 지나갔다. 꽤 높은 고도로 날아가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늘 신께 기도했다. "하나님, 어서 나가서 다시 영국 런던으로 가게 해 주시고 중단된 사업도 다시 시작하게 해 주세요." 나는 중얼거리며 운동장을 돌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날이 당좌수표가 2차 최종 부도가 나는 날이었다. 지나온 시간이 후회스러웠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뒤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약 일주일 정도 생활하고 보니 구치소가 밖의 세상보다 더 편할 때도 있다는 기이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곳은 빚쟁이들이 찾아와 채무 이행을 종용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 안전한 장벽이 쳐져 있었다. 식사 때마다 나라에서 주는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여기서 몇 달만 지내고 나가면 당좌수표 부도에 대한 형사적 채무 관계는 끝나는 것이었다.
어떤 재소자들은 이 상황을 '지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몇십억씩 돈을 감추어 두고 이곳에서 몇 년 지내다가 나가는 것이 오히려 외부에서 쫓기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다. 왕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파라다이스입니다.
”형님요, 어찌 보면 여기 있을 때가 마음은 더 편합니다. 나를 잡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 끼니마다 밥 나오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샤워할 수 있죠, 아프면 의무실 가서 약 받아오고 뭐 여기가 파라다이스(천국) 아닙니까?“ 하고 두 번째 들어왔다는 서봉수가 웃으며 얘기하였다.
그러나 이곳이 아무리 '천국'이라도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아니,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모두 그런 마음일 것이다. 말로만 천국인 것이다. 현실은 자유가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지옥 생활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영국으로 날아가는 꿈을 단 한 번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기도를 하면서, 나를 뒤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 영치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 대부분 다 사 먹을 수 있었고, 나는 성경책만 읽고 6호실 재소자들을 돌보는 것이 인생에서 제일 귀중한 '영혼의 목욕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감방 밖의 유일한 생명줄
토요일 아침이 되면 나는 다른 때보다 훨씬 공들여 몸단장하였다. 거의 1주일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얼굴은 털로 가득했지만, 토요일 아침이면 깨끗하게 면도를 하였다. 면회자가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었지만, 막연하게 기다려지는 날이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싶은 의식과도 같았다.
면회 시간은 참 짧다. 법적으로는 최대 30분 이내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 일반 접견은 5분에서 10분 내외로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수용자의 등급(일반, 화상, 변호인 등), 그리고 기관의 당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되었다. 더 안타까운 소식은 면회를 왔다가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구치소로 수감되는 일도 가끔 있는데, 자신이 기소중지가 된 사실을 모르고 면회 왔다가 면회자 신원파악 때 당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28동에는 그런 사람이 있어 다른 재소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아내는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데 열심이었다. 그러나 남편인 내가 구치소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교회에 알리지 않았다. 인간들이 모인 세상은 늘 말이 많았고, 특히 경제사범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아내는 깊은 비밀을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교회 사람들에게 남편은 사업차 영국에 출장을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만 하고, "물건 생산이 잘못되어 확인하러 갔는데 빠르면 2~3개월 안에 한국에 돌아올 것"이라고 둘러대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