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의 면회, 마지막 생명줄
감옥에 핀 매화, 나비를 꿈꾸다
"2887번 김매균 나왔!" 간수가 내 이름을 부르고 옥문의 자물쇠를 열어주는 소리는 언제나 심장을 멎게 했다. 면회소로 가는 길은 차가운 시멘트 복도를 따라 꽤 멀었다. 그 짧은 거리조차 외부 세계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이기에 절박하게 느껴졌다.
면회 시간은 평균 10분이었다. 면회를 오면 할 말이 많지만, 시간이 너무 짧으므로 핵심적인 내용만 얘기해야 한다. 매주 토요일, 빠지지 않고 나를 면회 온 분이 있었다. 아내가 주일학교 교사였는데, 주일학교 부장 집사님이 토요일마다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얼굴 많이 좋아졌어요. 힘내시고 용기를 가지세요."
집사님은 교회 소식과 주일학교 소식을 자세히 전해주었다. 특히 아내는 두 딸과 함께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리며 아빠가 빨리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들 몇 명이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나를 위해 릴레이 기도를 하고 있으니 힘을 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대화 내용을 듣고 기록하는 구치소 직원들의 입회하에 면회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적인 이야기나 채무와 관련된 민감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가족들이 나를 잊지 않고,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겹도록 감사했다. 집사님은 짧은 시간을 면회하고 돌아갈 때는 늘 나의 두 손을 작은 구멍을 통해 꼭 잡고서 기도했다. 내 눈가에는 어느새 촉촉이 눈물이 고였고,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몰랐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면회는 감방 생활의 유일한 생명줄이자, 외부와 연결된 마지막 탯줄이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순간
TV는 없지만, 우리는 매일 신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재소자가 영치금에서 신문값을 지불하면 매일 방에 넣어준다. 우리는 의논하여 국민일보와 동아일보 두 신문사의 신문을 받아보았다. 그래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실시간은 아니지만,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신문 첫 지면에 남쪽 지방의 봄소식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섬진강의 매화꽃 사진은 겨울 감방의 냉기를 뚫고 들어온 듯 아름다웠고,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봄은 바깥세상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재소자들의 마음에도 희망의 물결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나는 이미 영국에 가서 하이드 파크를 아내와 손잡고 걷는 그림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재소자들도 이번에 나가면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다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깊은 성찰 끝에 깨달았다. 대부분 사회에 다시 나가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보다는 옛것을 새로운 각오와 결합해 살다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교정 당국은 재소자들을 분류해서 관리하는 것이다. 잘못하면 이곳에서 더 차원이 높은 기술들(범죄 수법)을 배워서 잘못된 생각으로 사회에 나가 다시 사고를 내기 때문이다.
"매균이 형님은 나가시면 다시 계속 사업을 하실 건가요?" 깐돌이가 갑자기 물었다. "몰라,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나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 다만 영국에서 생산하다가 중단된 일은 반드시 하고 싶어." 나는 다시 영국의 사업들을 회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