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상처가 깊으면 눈물도 마를까

언제 다시 오시나요?

by 임래청
기도가 야생화의 꿈이 되다

캄보디아에 오기 전, 우리는 사역지로 아프리카와 중미, 동유럽 등 여러 나라를 마음에 품었었다. 그때도 나의 관심은 늘 어린이와 청소년 사역이었다. 중미 온두라스의 한 보육원을 방문했을 때, 사역을 마치고 떠나려는 우리 부부의 소매를 붙잡고 눈시울을 붉히던 자매의 눈동자를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Cuándo vendrá (usted) otra vez?” (언제 다시 오시나요?) 예쁘게 생긴 두 자매가 아내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물었을 때, 우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함부로 약속해서도 안 되는 이별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었다. 부모 없는 외로움과 짧은 만남이 남긴 이별의 아픔이 그 아이들의 눈물 속에 가득했다.


1773039025128.jpg 보고싶은 중미의 온두라스 고아원 자매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발을 내디딘 이곳, 캄보디아는 달랐다. 이곳 아이들은 온두라스 아이들처럼 뜨거운 눈물을 쉽게 흘리지 않는다. 슬픈 이야기를 먹으며 자라지만, 겉으로는 늘 무뚝뚝하거나 잔잔한 미소뿐이다. 상처가 너무 깊으면 눈물샘도 마르는 것일까. 나는 그 메마른 눈동자들을 마주하며 이 땅의 토양에서 자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선교사가 되었다.


사실 나의 기도는 오랫동안 나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지, 덜 힘들고 더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붉은 흙먼지는 내 기도의 방향을 타인에게로 돌려놓았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하신 말씀처럼, 내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자 기도의 제목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부부는 매일 밤 무릎을 꿇고 디모데교회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욕망을 넘어 아이들의 꿈을 위해 기도한다.


사역은 때때로 무력함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캄보디아의 구조적인 가난과 상처는 내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하지만 내 눈물이 인간적인 한계의 끝이라면, 주님의 은혜는 그 한계를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시작이었다.

1773039474086.jpg 아내의 품에 안겨 자신들의 보모을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간절한 기도는 아이들의 현실이 되었다. 꿈 없이 하루를 살던 아이들이 디모데교회 방과 후 교실에 모여 미래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영어, 수학, 크메르어, 컴퓨터, 음악 교실까지... 좁은 디모데 교실에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배움의 열기를 뿜어낸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가난하지 않을 권리와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기적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


상처를 안고 야생화의 꿈을 꾼다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자기 곁을 떠난 아빠의 상처를 안고 있던 호안이, 이제는 다음 세대를 일으키는 든든한 리더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리더 한 사람의 성장은 곧 이 땅을 다시 살릴 생명의 씨앗이다. 나의 마지막 소망은 하나다. 이 무뚝뚝한 크메르 청년들의 눈망울에서 진정으로 흐르는 눈물을 보는 것.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그리고 이름 없는 늙은 선교사의 진심 어린 삶을 보며 흘리는 감사의 눈물 말이다.


내가 흘린 눈물 위로 주님은 아이들의 소망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야생화를 피워내고 계신다. 이제 나의 사역과 기도는 흙 속에 묻힌 씨앗이 되어 야생화의 꿈을 꾼다. 캄보디아의 붉은 땅 위에서, 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응답으로 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온두라스 고아원 자매들이 너무 보고 싶다.

나에게 한 번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다시 가보리라 생각한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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