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딸 하나를 더 낳았습니다.
또 다른 딸을 얻다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시다.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시편 68:5-6)
“호안, 컴퓨터 교육은 지금 몇 명이니? 그리고 영어 수업하는 학생들은?” 나는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통유리 바깥은 오토바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폭우를 쏟아낼 듯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아갈 때쯤 호안이 대답했다.
“컴퓨터는 서른두 명이고, 영어는 모두 합쳐서 일흔두 명입니다.”
방과 후 교실을 갑자기 시작하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어린이들이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가르치는 게 많이 힘들겠지만, 이 아이들이 잘 배워야 캄보디아의 미래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잘 알고 있어요.” 호안도 내 말에 공감하듯 창밖의 검은 구름을 응시했다. 대화가 깊어갈 즈음,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호안, 아빠는 지금 나이가 몇 살이시니?” 호안은 한참 동안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하더니 “예순넷요”라고 답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셔?” 내 질문에 호안은 덤덤하게, 그러나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몰라요. 7년 전에 집을 나갔거든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빠가 직업도 없나 싶어 의아해했던 내 자신이 무안해졌다. “아빠가 없다니? 개인 신상카드에는 부모님이 다 계시다고 기록했잖아?”
“사실은 7년 전 아빠가 우리를 버리고 떠났어요.” 호안은 다시 먹구름을 응시했다.
중학생, 그 예민한 사춘기에 아빠가 사라진 자리를 호안은 무엇으로 채우며 버텼을까. 캄보디아 리더들의 가계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온통 떠난 아버지들의 빈자리뿐이었다. 쿤띠아도, 티어리와 라타나 남매도 모두 아빠가 없거나 새아빠와 살고 있었다.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도 힘들 세상인데, 이 청년들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무거운 기분을 전환하려 짐짓 장난스럽게 조심스런 제안을 건넸다.
“만약 호안에게 아빠가 다시 생긴다면 어떻겠니?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서울에 두 딸이 있는 거 알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 호안에게 목사님이 아빠가 되어주면 어때?”
호안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수줍어하는 그의 눈을 보며 나는 다시 확신을 주었다.
“목사님이 호안 아빠가 되어줄게. 이제 나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겠니?” 호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쑥스러운지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호안에게 내가 다시 말했다.
자, 아빠! 하고 한번 불러봐
호안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빠...” 그 작은 목소리가 내 가슴에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그래, 이제부터 나는 호안 아빠야. 호안은 내 딸이고. 아빠와 엄마는 우리 딸을 많이 사랑한단다.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어. 교회에서는 아빠라고 부르지 말고 목사님이라고 불러야 해. 티어리나 쿤띠아도 아빠가 없잖아.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자, 알았지?” “네, 알겠어요. 아빠.”
이렇게 해서 캄보디아 땅에 두 번째 영적인 딸이 태어났다. 호안을 보내고 비가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 오토바이 핸들을 당겼다. 씨엠립 강변을 따라 달리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다정하게 들렸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 먹구름이 머리 위를 휘몰아쳐 지나갔지만, 내 마음에는 환한 무지개가 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여보, 오늘 딸 하나 더 낳았어!”라고 말할 생각을 하니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