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어린양 리더들
암노스(Amnos), 어린양 리더들
디모데교회 사역을 시작하며 내가 가장 공을 들인 일은, 리더들에게 단순한 직분이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청년들을 불러 모아놓고 선언하듯 말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을 '암노스(Amnos) 리더'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청년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낯선 헬라어 단어가 그들에게는 그저 생소한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성경 속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설명을 덧붙였다.
"암노스는 헬라어로 '어린양'이라는 뜻이야. 세상의 리더는 남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만, 성경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마태복음 20:28)'라고 말씀하신단다.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게 공동체를 섬기는 어린양이 되어야 해.“
그 의미를 깨닫자 리더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씀의 배움도 부족하고 사람 앞에 서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예배를 인도하고 공동체를 이끌어간다. 누군가는 찬양을, 누군가는 아이들 교육을, 또 다른 이는 말씀 나눔을 맡아 서로의 빈자리를 퍼즐 조각처럼 채워가기 시작했다.
맏언니인 소피읍 자매가 "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찬양해요!"라고 외치면, 좁은 예배당은 순식간에 아이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 찬다. 세련된 악기는 없지만, 생목소리로 터져 나오는 그들의 찬양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요한복음 4:24)'의 깊은 울림이 있다.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설교라고 생각한다. 리더들은 말씀 나눔 시간에 배운 화해와 용서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 나간다. 아픈 이웃을 위해 스스로 중보기도의 무릎을 꿇고, 공동체 안의 갈등을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며 성숙해졌다. 복음이 지식에 머물지 않고 삶으로 흘러가자,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진정한 어린양이 되어갔다.
나는 선교사라는 거창한 명칭을 앞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름이 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아이들과의 거리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 내내 주일이면 차이나 카라 셔츠에 늘 똑같은 정장 바지 차림으로 교회에 간다.
사실 목회자의 가운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뿌리를 가진다. 하나는 구약 시대 제사장의 예복에서 기원한 성별(聖別)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 대학의 학자 의복에서 유래한 진리 가르침의 권위다. 종교개혁자 칼뱅(Calvin)은 사제들의 화려한 복장을 거부하고 단순한 학자 가운(Geneva Gown)을 입음으로써, 목회자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수종드는 자임을 강조했다.
목사 가운을 입는다고 해서 거룩함이 저절로 덧입혀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특별한 절기나 예식에서 가운을 입는 전통의 숭고함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나 역시 언젠가 주님과 내가 온전히 한 몸으로 일치되었다는 확신이 드는 그날 기쁘게 가운을 입고 예배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 캄보디아의 흙먼지 속에서는, 가운의 권위보다 아이들의 땀 냄새 나는 삶 속으로 기꺼이 스며드는 비천함의 거룩이 더 절실하다고 믿는다.
종교개혁의 핵심 정신이 만인제사장이듯, 복장은 형식이요 본질은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의 진실함이다. 내가 화려한 가운 대신 평범한 셔츠를 고집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목사님'이 아닌 아빠처럼 다가가 그들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리더들은 내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들의 가감 없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는(고린도전서 1:27)" 신비를 매일 목격한다.
비록 지금은 못자리판 같은 작고 초라한 가정집 교회에 모여 있지만, 나는 꿈을 꾼다. 여기서 단단하게 자란 어린 모(苗)들이 훗날 캄보디아라는 거대한 논으로 옮겨 심겨, 이 땅 전체를 황금빛 복음으로 물들일 그 영광스러운 날을 말이다.
한 표의 기적, 한국으로 날다
“호안, 소피읍! 지금 기분이 어때? 많이 떨리니?” 2024년 4월 첫째 주, 인천행 비행기 안.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안전띠를 매고 앉은 호안과 소피읍의 얼굴에는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를 때, 나는 아이처럼 설레는 목소리로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목사님! 너무 신기해요!”
소피읍이 수줍게 대답했고, 호안은 창밖을 보며 꿈결 같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도 모르겠어요. 정말 꿈만 같아요.”
긴장한 아이들을 위해 나는 짐짓 호쾌하게 농담을 던졌다.
“비행기 타는 기분이 어떠냐고? 음... 그냥 비행기 타는 기분이지! 하하!” 기내에 퍼진 우리의 웃음소리가 엔진 소리보다 더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낙제생 호안을 구한 ‘공동체의 한 표’
이 기적 같은 여행의 서막은 2023년 3월에 올랐다. 나는 리더들에게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2)”는 말씀을 실천할 파격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어 토픽(TOPIK) 2급 수준에 도달하면 한국 문화탐방의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리더들의 눈빛엔 불신과 설렘이 교차했지만, 도전은 시작되었다. 그해 11월, 마침내 치러진 자체 시험에서 소피읍은 78점으로 합격했으나, 호안은 68점으로 커트라인에 단 2점이 부족했다.
나는 결과를 발표하며 소피읍에게 물었다. “소피읍, 호안은 탈락인데 너 혼자 한국에 갈 수 있겠니?” 소피읍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목사님. 호안이 없으면 저도 가지 않겠어요.” 나는 리더들에게 제안했다. 점수라는 차가운 잣대 대신 공동체의 사랑으로 호안에게 기회를 주자고 말이다.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이내 모든 리더가 기쁘게 손을 들었다. 그들의 찬성표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중 누구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는 화해와 연합의 선언이었으며,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안도의 꽃이 핀 호안의 얼굴을 보며 나는 이들이 이미 한국에 갈 자격을 영적으로 먼저 갖추었음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