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2887번의 기적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by 임래청
53일 만에 열린 천국의 문

재판장은 생각보다 넓었다. TV에서 보았던 방청객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극도의 긴장을 하여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높은 천장과 넓은 방, 저 멀리 높은 단상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재판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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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오른쪽 방청석 단에는 변호인단 자리가 있었지만, 나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김매균 씨, 고개를 드세요."


판사는 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부도 금액과 수표발행 은행 등을 침착하게 읽어 내려갔다.

판사가 먼저 물었다.


"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나요?"

"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습니다."

"국선 변호사라도 선임하지 않으셨죠? 맞습니까?"

"네, 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판사는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보면서 말했다.


"김매균 씨,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보세요."


나는 재판장을 응시했다. 그는 온화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재판장은 부도 금액을 다시 확인하고 부도를 낸 이유를 물었다.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자금난으로 부도가 났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김매균 씨. 사회에 나가면 열심히 일해서 꼭 갚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선고합니다. 김매균 씨 귀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10개월을 예상했는데 1년 실형을 받았으니 앞이 캄캄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렸고, 간수가 나를 대기소로 인도했다.


"당신 정말 오늘 운 좋았어." 간수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2년 형을 받았는데 뭐가 좋아요?" 내가 허탈하게 답했다.

"이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당신 내일 집에 간다고. 오늘 12명 중 살아서 집에 가는 사람은 당신뿐이야. 정말 운 좋은 사람이네.“


법정에서 선고된 새로운 운명


’집행유예'라는 단어는 세상 밖에서는 흔한 법률 용어였을지 모르나, 그 순간 나의 귀에는 천국에서 들려온 천사의 목소리와 같았다. 선고가 내려지기 직전, 판사님의 단 하나의 표정, 혹은 목소리의 떨림 하나하나를 읽어내려 했던 나의 긴장감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의 간절함과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의 새로운 운명을 선고받았다. 유예(猶豫), 즉 미루어짐은 단순한 법적 자비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라는 하늘의 명령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갇혔던 물리적인 감옥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짓눌렀던 실패와 죄책감의 감옥에서도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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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순간, 나는 이미 53일간의 고통이 나를 새로운 소명으로 이끌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만약 실형을 선고받았다면, 나는 절망과 분노 속에서 과거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행유예라는 따뜻한 선고는 나에게 과거를 용서하고, 미래를 향해 감사하며 나아갈 의무를 부여했다. 이 새로운 운명은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이며, 이제 이 삶은 나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안겨주었다. 법정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가슴에 새겨진 사명의 무게는 이전의 어떤 사업 실패보다 무거웠다.


간수는 나를 데리고 11명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로 가면서 집행유예(執行猶豫)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받은 선고의 의미를 깨달았다. 2년 동안 죄를 짓지 않으면 징역 1년 형은 면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판사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죄를 고백한 것이 다른 재소자들은 받지 못한 특별한 은총, 즉 인생의 기회를 가져다준 것이다.


간수가 나를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당신 교회 나가요?"

"네, 갑니다만."

"그렇지. 그 판사님이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이상하다 했어. 당신 말이야, 1년은 받아야 하는데 오늘처럼 12명 중 당신만 살아가는 걸 보면 하나님이 도우셨구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구치소 벽을 넘지 못했던 수많은 고백과 기도가 마침내 응답받았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죄를 시인했을 때 찾아온 뜻밖의 용서. 그것은 단순한 법적 판결이 아니라, 남은 생을 타인을 위해 살라는 하늘의 준엄한 명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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