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올무를 벗어나 세상으로 가다

마지막 설거지

by 임래청


올무에서 세상으로 귀환

간수의 설명을 듣고서야 내가 자유라는 문턱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대기실로 돌아와 마주한 풍경은 차마 기뻐할 수 없는 무거운 침적물 같았다. 아침에 함께 호송차에 올랐던 11명의 재소자 중, 단 한 명도 집행유예를 받지 못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60대 노신사 역시 4천 5백만 원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부도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실형이라는 가혹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그들은 이제 절망적인 심정으로 항소(抗訴)를 준비해야 했고, 차가운 감방에서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더 견뎌내야만 했다.

마음속으로는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날아갈 듯 기뻤지만, 11명의 무거운 침묵과 좌절 앞에서 나는 그 기쁨을 철저히 유보했다. 이 순간 나의 명징한 행복은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잔인한 고통이 될 터였다. 53일간 같은 올무에 묶여 생사의 고락을 나누었던 동료들이었기에, 나는 구치소로 돌아가는 호송차 안에서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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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호송차 좌석에 등을 기대고, 창밖으로 흐르는 서울의 저녁 풍경을 묵묵히 응시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가 떠나는 자들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예의이자, 침묵의 운명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53일 전, 두려움 속에 들어왔던 그 길을 이제 나는 내일이면 떠날 자의 가벼운 슬픔을 안고 되돌아가고 있었다.


29동의 포옹과 마지막 설거지

호송차를 타고 구치소로 돌아와 입감 절차를 위해 대기실로 이동했다. 수갑과 포승줄이 풀리는 순간, 육체의 구속이 해제되는 경쾌한 감각과 함께 내 발걸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졌다. 53일 전, 두려움에 질린 채 이 육중한 29동의 철문 앞에 섰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겁에 질린 채 긴 복도를 걷던 7명의 뒷모습은 이제 영원한 과거가 되었다.

간수가 6호실의 자물쇠를 돌려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오늘 재판의 결과가 곧 자신들의 투영될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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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어떻게 됐어요? 몇 개월 나왔습니까?“

나는 그들의 기대를 단번에 깨뜨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을 침묵했다. 방 안에는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응…. 나, 징역 1년 선고받았어. 그런데…. 내일 집에 가.“

나는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깐돌이가 가장 먼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 1년형인데 어떻게 집에 갑니까?" 그는 내가 재판의 충격으로 정신을 놓은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나 정말 집에 가. 집행유예(執行猶豫)를 받았거든.“

순간, 6호실에는 폭발적인 환호와 경이로운 정적이 교차했다. 거액의 부도를 내고 들어와 있던 사장 동료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세상에, 정말 기적이라는 게 있나 봅니다!"

그는 내가 나간다면 반드시 삶의 태도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던 이였다. 모두가 믿기 힘든 결과라며 나에게 달려와 어깨를 두드렸다.

"형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건 정말 하늘이 도운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