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는 누가 만들었을까?
"이 이야기는 모두 실화다.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만 빼고."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드라마 '애나 만들기' 오프닝 문구이다. 애나 만들기는 2013년 뉴욕에 등장한 애나 델비가 곧 있으면 거액을 상속받을 여자라며 스스로를 소개한다. 액수는 6000만 달러(대략 740억 원). 이렇게 자기 소개하고 다니며 뉴욕 상류층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다닌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이다.
비비안 켄트. 드라마에서는 맨해튼 매거진의 기획 기사 담당 기자로 등장한다. 이전에 쓴 기사가 문제가 되어 나이 든 기자들의 유배지라 불리는 '기베리아'에 좌천되다시피 한 신세다. 하지만 그곳에서 노련한 베테랑 기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비비안은 애나가 흥미로운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 느낌을 받는다. 데스크의 반대와 임신 막바지임에도 불구하고 취재를 강행한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녀 주위에는 기베리아의 선배들이 있다.
애나의 인스타그램 분석으로부터 이야기가 진행된다. 애나의 변호사와 검사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을 만나면서 애나의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라이커스 섬에 구금된 애나를 만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설득한 방법은 돈도 아니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약속도 아닌 단지 유명해지게 만들어준다는 제안. 비비안은 관종인 애나를 정확하게 분석했다.
2016년 1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거의 한 푼도 내지 않고 맨해튼 고급 호텔들에 투숙하며 무전취식하고, 공짜로 개인 전용기에 사용을 하며 은행들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도시인 맨해튼에서 프라이빗 멤버 전용 아트 클럽 '안나 델비 재단'을 설립한다는 명분으로 위조 서류와 음성 변조까지 하며 2200만 달러(대략 274억 원)의 은행 대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최종 승인 심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리만을 겪었던 나라인 미국에서 어린 여자의 가능성만 보고 최종 승인까지 갔다는 것이 놀라웠다. 뼈아픈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깨달음을 모르는 월 스트리트. 결국 애나는 호텔 밦 값과 투숙비를 내지 않은 혐의로 2017년 말 체포됐다.
조사 끝에 그녀는 애나 델비가 아닌 소로킨. 국적도 독일이 아닌 러시아였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스스로를 속여가며 상대방을 사기 친 소로킨은 4년가량 복역한 후 모범수로 인정받아 출소했다. 하지만 체류기간 초과로 인해 ICE에 붙잡혀 1년 동안 구금 중이며 곧 추방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허무
우린 늘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며 배우며 자란다. 외모보단 마음을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 사회생활이나 사교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나, 가지고 있는 직업이나 차를 보며 그 사람을 평가한다.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에 꽤 많이 신경을 쓰는 현대 사회 사람들.
애나에게 피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노라 할머니처럼 쌓아둔 것은 돈이 아니라 자존심뿐인 사람들. 노라는 자신이 무시하던 젊은 여자애한테 이용당한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수치스럽게 느껴진다며 신고를 주저했다. LA로 도망간 애나를 검찰이 단번에 잡지 못했던 이유도 노라 할머니와 같다. 윌스트리트, 법조계 거물들이 꽤나 관여되어있었기 때문. 세상에서 제일 돈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도시도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
애나를 변호하는 변호사도 마찬가지. 결국 그도 돈이 많은 와이프 집에서 항상 아무 능력이 없는 변호사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애나 변호를 맡는다. 그러나 의뢰인인 애나가 진심으로 부탁한 내용을 이용해 일정 부분에서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의 변호 내용은 꽤나 감동적이었고, 사실이었며 배심원단을 설득하기 충분했다. 그 이후로 밀려 들어오는 의뢰들과 인터뷰. 결국 스타덤에 오른다. 그도 애나를 이용한 것이다.
기자 비비안은 어땠을까? 애나 이야기로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며 스타 기자로 우뚝 선다. 세상이 그녀를 칭송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묘한 감정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 자기가 쓴 기사로 이목이 집중되어 애나의 형량이 과대하게 받는 것 같아 죄책감까지 느낀다. 결국 애나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와 마지막 화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그들이 가진 직업의 윤리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비비안은 그래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실제로 애나가 아니 소로킨의 이야기 중 사실은 있을 거라고 의문을 가진다. 출산을 하고 갓난 아기를 두고 애나가 살았던 독일로 출장을 간다. 그곳에서 애나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가정폭력을 받았다던 애나의 진술이 더해지면서 비비안은 아버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몰래 애나의 아버지 집에 잠입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에 의해 들통이 났고, 집에 들어가서 애나의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를 한다. 알고 보니 애나의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민을 왔고, 평범하고 성실히 사는 트럭 운전사였다. 애나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 떠났던 출장에서 비비안도 겉모습에 현혹되어 오해를 했고, 팩트를 놓칠 뻔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애나 스토리로 우리에게 겉모습에 휘둘려 얼마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애나의 사기 행각은 명백히 잘못한 것이지만 우리도 겉모습에 속아 무엇이 중한지도 모르는 현대인의 모습을 꼬집는 드라마였다.
애나는 넷플릭스에서 4억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라마화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한다. 애나가 수락한 이유유를 추측하자면 아마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창피함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애나는 진짜 광기이자 관종이어서 수락한 것 같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인 소용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드라마를 보는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너네라고 다를 것 같아?라고 말한 것만 같은 애나의 눈빛.
우리가 어렸을 때 한 번 즈음 읽었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로 마무리 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