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Z 세대,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

Life in Canada

by 림스

"야, 캐나다 영주권 신청 가능하냐?"


캐나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4시경 받은 카카오톡 하나. A에게 온 카톡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퇴근 후 술 한 잔 하고 집에서 카톡 보내기 좋은 시간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A는 현재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다.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현재는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자 친구도 있으며 잘 생활하고 있는 A였다.


A는 주변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대학교 학부 생활부터 알바, 동아리까지 열심히 사는 모습이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A였다. 가끔 만나 맥주 한 잔 하는 날이면 항상 이야기 소재가 끊이지 않았고 그 대화들은 생산적이었다. 그리고 졸업과 거의 동시에 A는 취업을 했고 나는 캐나다에 왔다. 우린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끝이 아니었다. A에게 취업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었다. 늘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자신만의 브랜딩을 만드는 것이 목적. 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면서 A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인스타 개설해 현재 2000 팔로워 이상 보유하고 있고 콘텐츠의 퀄리티를 더하기 위해 퇴근 후 그림과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다. 주말엔 여자 친구와 데이트 및 인스타 콘텐츠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열심히 사는 모습에 멋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불안해 보였다. 아직 오지도 않을 내일을 위해 나의 오늘을 너무 뒤로 미뤄두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결국 퍼졌다. 직장 생활에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공백 없던 지난 삶에서 오는 무기력감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업무와 상관없는 현 정권에 관한 질문을 하는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치 관련 책을 주고는 읽어오라는 지시까지 있었다. 내겐 충격이었다. 사람 좋아하던 A가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자 무너졌다. 쉴 틈 없이 채우기만 하던 그에게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A는 더 이상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며 억지로 웃고 싶지 않았다.


나는 A에게 먼저 지금 선택은 감정이 많이 담겨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감정이 담긴 선택은 언젠가 후회를 불러올 수 있기에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을 해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A는 연차를 쓰고 잠시 숨을 고르기로 결정했다. 호흡을 터트리는 운동을 했다. 그리고 숨을 고르고 내린 결정은 영주권보다는 내년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안되면 여행이라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영주권을 준비하기엔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나는 A에게 캐나다 영주권에 대한 관련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공유해주었고, 유튜브도 추천해줬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해줬다. 아직 하는 일에 비해 급여도 적고 때때로 몸도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다. 여기 있다고 네가 행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너는 일도 잘 구할 것이고, 마음 또한 편할 것 같다고 말해줬다. 이 말을 들은 A는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이번에 벌어진 틈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모르겠지만 A의 방향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을 하게 된다면, 성공해야 A친구의 커리어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력을 많이 하고 운이 아주 좋아야만. 하지만 A는 본인보다 급여도 적고, 하는 일이 별 볼일 없는 나에게 캐나다를 물어봤다. A의 이런 연락은 내가 영주권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계기들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 사회생활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A가 힘들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런저런 알바는 많이 해봤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이런 삶의 궤도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업무와 관련 없는 이야기, 정치적인 부분, 관심이라는 포장으로 나를 깎아내리는 말들, 주변으로부터의 시선, 나이에 대한 압박감 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해 현재 A는 지쳐 보였다. A는 이러한 질문들을 하는 어른들을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그들의 위엄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였다. 캐나다에서는 저런 질문들은 물어보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분위기라고 A에게 말해줬다. A는 조금 부러운 내색을 보였다.


지쳐 보이는 A에게 내년에 캐나다에서 보자고 장난으로 말했다. 그는 애써 웃으며 그러자고 답했다. 항상 밝았던 친구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언젠가 마주해야 할 질문들이라면, 지금 앞에 놓인 물음을 잘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