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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Jun 20. 2022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Life in Canada

동네 앞 산을 오르기로 했다. 캐나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다음으로 큰 폭포가 집 앞산이 있다. 이름은 Shannon Falls. 밴쿠버 방향 도로를 타면 큼직한 폭포가 옆에서 떨어지고 있다. 전 날 비의 양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비가 오지 않는 한 여름에는 크기가 조금은 작아질 수 있지만 비가 자주 내리는 초봄에 본다면 큰 폭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부딪혀봐야 아는 우리처럼 폭포도 부딪히면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를 하고 폭포 쪽으로 걸어갔다. 숲 속 길을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폭포는 보이지 않았다. 산에서 떨어진 물이 땅으로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렸고 미스트 같이 뿌려지는 물들 만이 얼굴을 스쳤다. 조금 걸으니 폭포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폭포 앞엔 관강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Shannon Falls


처음 와본 대호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가 눈으로 담기 위해 한 동안 폭포를 바라봤다. 우린 저 위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천천히 등산로로 들어섰다. 본격적인 오르막을 오르기 전에 나무들로 둘러싸인 길을 걸었다. 어제 내린 비는 산의 녹향을 더 짙게 만들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 폐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5월의 녹향을 제대로 음미하며 걸었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나왔다. 풀 냄새를 느낄 새 없이 숨을 가쁘게 쉬기 바빴다. 오랜만에 하는 등산이라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보고 먼저 가라는 대호의 말에 나는 먼저 올라갔다. 가파르게 이어져있는 계단들을 하나 두 개씩 올랐다. 대호의 위치가 궁금해 뒤를 바라봤다. 대호는 하나의 점으로 보일만큼 멀리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나는 다쳤나 싶어 내려가봤다. 대호는 그저 숨이 찰뿐이라고 말했다. 같이 오르기로 했지만 그는 몇 발자국 못 움직이고 쉬기를 반복했다. 아직 산을 오른 지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오른 시간은 10분 내외이다. 3시간은 더 가야 하는 산이다. 우리는 오후에 산행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는 가다가는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대호에게 말했다. 안 될 것 같으면 내려가자고. 



몇 번을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다 결국 내려왔다. 대호는 내려오면서 내게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려본 적이 올해 처음이라고 말했다. 매너리즘에 빠졌던 그는 매일 일하고 돌아오면 먹고 자기를 반복했고 생활 패턴은 완전히 무너진 채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살은 찌고 무기력증은 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사실 2주 동안 4개의 산을 오르기로 계획이었다. 정확한 날짜만 정하지 않았을 뿐. Shannon Falls 산은 4개의 산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낮은 산이었다. 이 산으로 몸을 풀고 차근차근 어려운 산을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획을 전면 수정했어야 했고 우린 다시 깨달았다. 여행은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런 면에서 우리 인생들과 퍽 닮았다는 것을.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 느낌이었다. 


제일 난도가 높은 산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곳을 갔다가는 중간에 조난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린 동네 산책과 가벼운 트레일 길을 걷기로 계획했다. 산 말고도 아름다운 곳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단추가 잘 못 끼워지면 단추 없는 옷으로 갈아입으면 그만이었다.


대호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많은 것을 느낀 듯 보였다. 현재 자기 몸 상태와 정신은 어떤지.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대호는 이번 산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가 어떤지를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가끔 자신의 상태가 무엇인지 모를 때 산을 오르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주는 메시지를 산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집 근처 트레이 길을 걸었다. 내가 저녁을 먹고 자주 가는 산책 코스. 천천히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작은 성취가 주는 기쁨은 언제나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무엇이든지 작은 것부터 천천히 시작해야 오래 간다.


우린 산책을 마치고 맥주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이니 마실 거는 마셔야 하니깐. 맥주를 마시면서 옛날 이야기를 했다. 우린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마시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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