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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Oct 05. 2022

캐나다에 살면 영어가 늘까?

Life in Canada

처음 영어를 배운 나이는 12살. 나와 비슷한 세대들은 기억하겠지만 어린 시절 파닉스라는 교재로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하는지도 모르던 나이에 영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받아 들었어야 했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 중 하나 "너희 세대들은 영어는 기본이다." 영어는 기본이고 우리나라 주변국인 중국어나 일본어를 배우라고 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캐나다에 산다고 영어가 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영어권 나라에 산다고 해서 영어가 유창 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캐나다에서 알게 된 어느 한국 사람은 20년 가까이 캐나다에서 살았지만 영어를 못한다고 했다. 약 2년간 캐나다 생활에서 얻은 개인적인 생각은 무작정 영어권 나라에 산다고 해서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학원을 간다거나 학교를 가는 케이스는 논외로 치겠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에 따라 다르다. 캐나다 로컬 사람들이 있는 지역에서 영어로 일을 하면서 어울리면 영어 실력은 당연히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업장에서 일을 하며 한국 사람들이랑만 어울리면 영어 실력이 향상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곳들이 캐나다에 꽤 많다. 내가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서 앞 문장처럼 지냈다. 영어에 대해 익숙은 해졌지만 실력이 향상되었다고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현재 편의점 캐셔로 일을 하고 있다. 편의점 캐셔 일을 하면서 확실히 회화가 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셔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대화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격은 ----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영수증 드릴까요?"


이 세 개의 질문은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면 키오스크에게 내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스몰 토크를 위한 질문을 던지면 짧게나마 영어를 이어나갈 수 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날씨가 굉장히 좋네요."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것은 잘 해결됐어요?"


이런 질문들을 하면 다양한 주제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영어 억양에 대해 익숙해질 수 있다. 가끔은 손님들이 나에게 질문을 해오면 긴장은 된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해서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문법과 발음이 좋지 않더라도, 말하는 속도가 느려도 친절한 캐나다 사람들은 이해해주고 대답을 해준다. 종종 내가 하려는 말을 다시 되물으면서 나에게 말해준다. 그것을 잘 기억하고 다음에 내가 그 문장을 사용하면 나에게 맞는 영어 문장이 된다. 


주제가 정해진 단골손님들이 생겼다. 주제도 다양하다. 하는 일, 평범한 일상, 자전거, 축구, 날씨, 로또, 골프, 주식 심지어 북한에 대한 이야기까지. 깊은 대화는 아니어도 2~3분 영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것은 시골에서 편의점 캐셔가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을 하면서 영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몇몇 손님들과 친해지고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영어 실력이 조금은 향상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자만심이 피어오르면 어김없이 자비 없는 속도로 내게 영어로 퍼붓는 손님이 등장한다. 밀려오는 파도를 몸으로 받는 느낌이다.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말에 천천히 말해주면 고맙겠지만 한숨을 내쉬며 짜증 내는 손님들이 있다. 이런 손님들은 내게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만들어주며 겸손하게 만든다. 아직은 부족한 이방인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만약 다른 나라의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가서 알바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편의점 캐셔를 추천한다. 도심 지역이 아닌 외곽 지역이면서 캐나다 로컬 단골손님들이 주로 이루는 곳이라면 안성맞춤이다. 몇 개월 정도 일을 하다 보면 손님들과 친해지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뻐근한 일상을 버티게 해 준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시간을 버티고 나면 영어 향상은 덤으로 따라오고 다른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영어는 기본이 아닌 기회를 얻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 도구를 이용해 현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 영어는 조금 못해도 인사 잘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응당 사람이라면 해야 할 도리들을 지킨다면 어느 곳이든 낯선 이방인을 환영해준다.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체를 바꿔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언어는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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