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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Nov 14. 2022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캐나다의 그림자

Life in Canada

낯설지 않은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몇십 년 만에 찾아온 11월의 한파라고 말한다. 산책을 나섰다. 장작을 태우면서 나오는 냄새는 캐나다 겨울의 고요함에 잔뜩 섞였다. 그 향기들은 허공에 날아다니고 있다. 이 겨울 냄새를 맡으며 나온 산책은 여러 가지로 묶인 생각의 실타래를 풀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정착한지도 벌써 1년 하고 6개월이 되어간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입으로 안녕을 말하고 그 안녕을 등으로 행동하며 몸을 실었던 비행기. 나의 고향이 작은 점이 되어가는 것을 몇 번씩 내려다보며 느꼈던 감정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곳이 점점 내게 다가와 그곳을 밟았을 때의 기대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한 고독함, 쓸쓸함, 외로움도 어느 정도 가신 지금. 이제는 지나가다 인사하는 이웃도,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지인들도, 쉬는 날에 같이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도 생겼다. 적응을 마치고 시간이 지나니 보이지 않던 캐나다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월세를 내지 못해 거리에 나온 사람들. 코로나 이후 가파르게 오르던 집 값과 월세. 금리 인상으로 주택 매매 거래량이 조금씩 줄면서 자연스럽게 주택 가격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한 번 오른 월세는 바람에 날아간 깃털처럼 좀처럼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주거에서 오는 안정성이 사라진 사람들은 먹을 것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찾는다. 캐나다 푸드뱅크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코로나 전과 비교해봤을 때 2배나 상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는 내용은 왠지 모를 씁쓸함만 남겼다.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들.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항상 좋지 않았다.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한 기색이었다. 인스턴트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려고 편의점을 들른 것 같다. 몇 번을 오가고 표정이 조금은 괜찮아 보였을 즈음 나는 그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그가 내뱉은 단어는 의학용어인 탓에 쉽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탈장이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수술이 미뤄졌고, 중간에 담당의사가 계속 바뀌는 바람에 3년 가까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점점 안 좋아지는 그의 표정은 가진 고통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모든 의료 서비스가 공짜인 반면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힘든 캐내다 의료 서비스. 캐나다 사람들 사이에서 마냥 웃을 수만 없는 농담이 있다. '기다리다 죽는다.' 아주 급한 질병은 바로 수술을 해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심장이나 뇌 관련 질환들로 응급실로 오게 되면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가 아니라면 기다려야 한다. 감기만 걸려도 병원에 가는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몇 개월 째 기다리는 여권, 수개월 째 기다리는 영주권 등 일처리가 빠르지 않은 공공 기관 서비스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워라벨 없이 일을 하는 사람들. 집이 없어 거리에 텐트를 치는 사람들과 마약에 영혼을 빼앗긴 거리의 사람들. 어느 곳이든 문제가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우리는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뜻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 인간이 살기 완벽한 사회를 부르는 '단어'는 있지만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은 그 '반대'인 경우. 



코에 닿는 써늘한 밤공기를 맛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답을 찾기 위한 산책에서 질문만 얻어왔다. 장작을 태우는 냄새는 겨울의 묵직함 속에 붙들려있고, 집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을 치는 질문 하나.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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