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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Nov 21. 2022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통화

Life in Canada

주말이 되면 부모님께 전화를 건다. 현재 한국과 캐나다 시간 차이는 17시간이다. 캐나다 시간으로 금요일 저녁이면 한국 시간으로는 토요일 점심 즈음된다. 직장인들인 친구들에게는 평일에 시간이 맞지 않아 통화를 하기 힘들어 주말에 걸곤 한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에 집에 있으면 친구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어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를 묻고 근황들을 들었다. 캐나다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월드컵 이야기, 아빠에 관한 험담, 앞으로의 계획 등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했다. 통화량을 보니 1 시간하고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앉아서 이야기하는 엄마는 내게 허리 안 아프냐고 물어봤다. 그 뜻은 본인이 허리가 아프니 이제 전화를 끊자라는 말과 같았다. 나는 또 연락을 한다고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 댁에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할머니는 스마트 폰이 없다 보니 다른 가족들이 없으면 나에게 전화를 할 수 없으시다. 항상 할머닌 항상 나에게 항상 밥은 먹었어? 굶으면 안 된다라는 말과 함께 돈 많이 벌어 오라고 말을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은 나에게 얼른 장가가라는 말씀. 장가 이야기가 나오면 이제 끊을 타이밍이 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안녕을 말한다.


아빠와 통화를 하면 캐나다와 나의 근황을 묻는다. 예전에 대답해드렸던 것들에 대해 다시 물으신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짜증이 조금 났지만, 캐나다에 온 이후로는 웃으며 잘 대답을 해드린다. 그리고 갱년기 엄마에 대한 험담이 시작된다. 나는 파도를 맞이하듯 그저 받아준다. 하지만 마지막엔 '그래도 행복하다'라는 말로 마무리가 된다. 말과 표정이 퍽 어울리지 않았지만 행복해 보이셨다. 잘 지내고 한국에 오면 소주나 마시자고 하신다. 나는 웃으며 알겠다고 말하며 통화를 마무리한다.


한 살 터울의 동생과의 통화는 거의 없다. 서로의 부탁이 있을 때는 빼곤. 이해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통화의 목적도 비교적 명확하다.


우리 가족은 대화가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대화량을 가진채 살았었다. 이야기 꽃이 만개할 때면 술을 함께 했다. 어쩌다 사소한 이유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토라지면 분위기가 다운된다. 그리고 새로운 주제로 웃으며 대화를 하는 모습. 나쁘지만은 않았기에 이러한 기억들이 주로 잔잔하게 남아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았다.


청명한 하늘 밑 돌 산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저런 사소한 것들이 소중한 것들임을 깨달았다. 저녁 즈음 캐나다 시골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저녁을 먹고 나온 저녁 산보였다. 같이 산책 나온 강아지는 편의점 앞에 묶어 두고, 안으로 들어와서 아이스크림을 사 간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난다. 역시 가족은 떨어져 지냐야 서로의 소중함을 안다.


혼자 살게 되면 말을 아예 하지 않은 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여서 편안한 것들이 많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들이 있다. 말을 통해 해결되는 직관적인 외로움. 텅 빈 방이 그리움을 부추길 때면 주말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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