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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Dec 05. 2022

내가 캐나다에 온 이유

Life in Canada

어느 날 문득 창문을 봤다. 여름날, 초록 빛깔을 비추던 집 앞 나무들의 잎들이 어느샌가 사라졌다. 반가운 겨울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졌다. 시간은 참 쉽게 간다. 어찌하다 보니 조금만 비와도 우산을 쓰는 나라에서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 나라로 오게 되었다. 우연이 이미 운명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왜 캐나다에 왔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말을 하다 내 본심과 다르게 전달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럴 때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어!라고 답하곤 한다. 물론 저 대답이 캐나다에 온 이유에 일정 부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유는 아니다. 집으로 오는 길 문득 저 질문이 머리에 스친다. 나 진짜 캐나다에 왜 왔지?


한국에서 살면 월세도 내지 않아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왜 나보고 캐나다로 가냐고 물었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에 몇몇 사람들은 굳이라는 단어로 시작해 내 선택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때는 거짓말로 대답할 때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잘 몰랐으니까.


한국에서는 일을 했고, 공부를 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조그만 시간이 지나면 편안함이라는 범주에 나는 가둬진다. 결국 익숙함에 젖어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 우리는 넘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존재니까. 스키나 자전거처럼 넘어져봐야 기술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도 늘 도전 앞에서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쪽이었다. 그 두려움을 깨고 싶었다. 결국 불확실성 투성이인 곳으로 불나방처럼 몸을 던져야 했다. 내겐 캐나다에 온다는 것이 그랬다. 


이곳에서 벌써 두 번째 겨울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왜 캐나다에 왔는지.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이 말을 하면 네가 어렸을 때 네 방을 가진 적이 없어서 그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 친구, 집까지 모든 것이 있는 한국에서 그런 삶의 방식으로 살다가는 언젠가 후회를 할 것 같았다. 무엇인가 계속하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파도 앞 모래성처럼 불안했다. 어느 날,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캐나다를 선택했던 것은 나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영어는 아직도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는 향상된 지점은 분명히 있다. 브런치에 글도 쓰다 보니 한국에서 불안하던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무작정 믿지 말라는 어느 유명한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나는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무작정 믿지 않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과 선택을 좀 더 믿기로 했다. 


내가 한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옳은 방향이었다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느 선택이 더 나았는지는 언젠가 시간이 알려 줄 것이다. 어느덧, 캐나다의 계절이 익숙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공기에서 살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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