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nock! Knock! 15화

시작과 끝 그리고 완성

지극히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휘슬러의 삶

by 림스

2020년 5월 6일 생일 하루 전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나의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는 끝이 났다. 사랑이 끝나고 사람에게 시간이 필요하듯, 한국 생활을 즐기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 입국자는 2주간 자가 격리 필수였기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격리당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을 못 본채 혼자서 생일을 맞이해야 했었다.


한국행 AIR CANADA 비행기


시작과 가장 먼 지점인 끝.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작 지점부터 잘 헤쳐 나왔다. 캐나다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영어도 서툰 내가 끝으로 달려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가치관들을 만났다. 때로는 신기했지만, 때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가끔은 한국의 익숙함이 그리웠다. 순간순간 정확한 해답이 없는 문제들이 내 앞에 나타나도, 반갑지 않은 크고 작은 역경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도 앞으로 나아갔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잘 해결하면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끝이라는 지점에서 돌이켜보니 좋은 선택들이었다. 웨스틴 호텔에서 포시즌 호텔로 이직한 선택들, 캐나다에 머물던 집을 결정했던 선택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전으로 무엇보다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휘슬러에서 보낸 선택이 내 인생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휘슬러 삶은 꽤나 아름다웠다. 적당히 벌면서 적당히 쉬는 삶. 돌이켜보니 한 편의 동화 같았다.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특히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이어서 특별했다. 한국에서의 삶은 미래에 더 무게를 두며 살았었다. ‘대학에 진학하면...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 항상 현재는 없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었고, 뒤처지는 느낌을 받아왔다. 한국에서의 오늘은 미래의 디딤돌이 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휘슬러보다 더 시골인 팸버튼

그러나 휘슬러에서는 달랐다. 오늘을 살았고 순간을 느꼈다.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니 내 삶이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처럼 느꼈다. 주변을 살필 수 있었고, 크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따뜻한 햇살 아래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어도,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를 타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스키를 타면서 설산을 바라보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호수에서 서성있는 것도 모두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휘슬러의 삶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자연도 한몫했다. 밤늦게 끝나고 퇴근길을 밝혀주었던 수많은 별 빛. 가로등 하나 없는 집 앞 길을 환하게 비추어주던 달 빛. 과학책에서만 보았던 북극 칠성을 집 앞에서 보았던 날. 출근길에 무심코 옆을 봤더니 풀을 야무지게 먹고 있던 곰. 밤새 눈이 내려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었던 휘슬러 산. 육십오만 년 동안 휘슬러 산에 새겨진 흔적들에 대해 감히 상상했던 일. 순간순간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수시로 날짜를 셌다. 이 추억들은 내 마음속에서 늙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 것이다.


2019년 4월 21일부터 5월 5일까지 끝을 향해 달려왔다.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 찰나를 인지하기 쉽지 않지만, 워킹 홀리데이 하는 동안만큼은 의식을 하게 되었다. 내 20대의 여러 챕터 중에 가장 빛날 챕터가 바로 이 시기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성공이나 실패에 그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완성. 완성이라 부르는 것이 나의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비 온 다음 날 흘러가는 구름처럼 빠르게 지나간 오늘, 내 인생의 한번뿐인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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