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nock! Knock! 14화

Self-Isolation

지극히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휘슬러의 삶

by 림스

우리는 제각기 각자 자신 속에 코로나를 지니고 있다.

왜냐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323214.jpg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일이 끊겼다. 아니 ‘잘렸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다. 호텔은 더 이상 우리에게 줄 일이 없다고 했다. 중국발 코로나 때문에 모든 예약이 취소됐다. 캐나다 정부에서 불필요한 외출이나, 파티 등을 삼가라고 권고사항을 내렸다. 모든 식당, 카페들이 문을 닫았고, 공공시설물 또한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코로나는 빌리지 전체를 자기 발밑에 꿇어앉혔다. 몇 만 휘슬러 주민들은 계속 몇 주 동안 발버둥만 치고 있다. 게다가 몇 주 전부터 휘슬러-밴쿠버, 밴쿠버-휘슬러 버스 회사들도 당분간 운행하지 않는다고 발표해 개인차가 없으면 밴쿠버도 못 나가게 생겼다. 진짜 Isolation이 시작됐다.


유난히도 추웠었던 겨울이 끝나가고 훈훈한 바람이 부는 봄이 오고 있다. 모든 것이 멈춘 휘슬러에 시간만은 성실히 가고 있다. 4시 전에 졌던 해가 이젠 8시가 되어도 쉽게 저물지 않는다. 오전이 다 끝나갈 때 즈음 일어나 집 앞마당으로 나왔다. 따뜻한 태양이 구름을 가르고 떠올라 겨울날을 환하고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이런 따스한 날은 나에게 자전거를 꺼내게 만들었고, 사회적 거리를 잘 유지하면서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트레이 길을 나섰다.


KakaoTalk_20200429_084006951_02.jpg 오늘따라 더 스산한 호수


자전거를 타고 근처 호수로 갔다. 호수가 부분적으로 얼어있었다. 겨울의 호수는 단란한 가족의 스케이트장이 되기도, 데이트 코스가 되기도 했다. 또 누군가에겐 자전거를 타는 길이 되었고, 또 다른 이에겐 산책 코스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따스한 태양이 호수를 녹이고 있었다. 코로나가 스며든 봄은 호수의 지난겨울이야기를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다.


동시에 코로나는 시민들을 한가하게 만들었다. 그 텅텅 빈 스산한 빌리지를 빙빙 돌게 만들었으며, 지나간 옛 추억을 상기하도록 만들었다. 목적 없는 산책에서 그들은 똑같은 트레이 길을 지나치기 마련이었다. 고립된 우리는 현재에 머무르고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겐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호수 위에 아름다운 구름들이 있었다. 구름들은 불규칙적이고, 역동적이며 빠르게 변하고 있었으며 호수 위로 낮게 깔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빨리 한국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만 더 버텨서 상황을 지켜볼 것인지.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떨쳐보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노력은 허공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생각을 안 한다는 자체가 또 다른 생각이어서 머리가 지끈했다.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이런 내 정신적인 상태는 마치 구름과 같았다.


가슴속에서 결심이 섰다. 이 결심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쌀쌀한 바람이 휩쓸자 호수엔 잔물결이 일었다. 그 일렁임은 모래 위로 넘쳐 내 마음을 적셨다. 적막한 호수가 깊고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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