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Canada
스쿼미시에는 한식당이 없다. 반면 초밥집은 많다. 남의 해준 '밥'을 먹고 싶을 땐 종종 초밥집을 간다. 초밥집이 해결할 수 없는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 내 몸은 자동적으로 밴쿠버 버스를 예약하고 있다.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을 위한 재료들을 사기 위함도 있다. 대략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것 같다. 한식당, 한인 마트가 없는 곳에서 살아 본 결과 한국인 없이는 살아도, 한국 음식이 없으면 못 산다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매일 비가 내리는 밴쿠버의 겨울이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밴쿠버로 나가기 전 날, 오후 6시 이후로는 금식이다. 밴쿠버행은 건강검진만큼 중요한 나만의 월간 일정이다. 메뉴 선정은 주로 유튜브를 보다 꽂히는 음식들을 먹는다. 우연히 지나가는 영상으로 짬뽕 먹방을 보게 됐다. 내일은 짬뽕이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와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오전 10시 30분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밴쿠버 다운타운에 도착한다. 내리자마자 짬뽕집으로 갔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짬뽕집. 한국인 서버가 한국말로 익숙한 인사말을 건넨다. 내가 한국인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셨다. 나도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발음과 문법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내 체계는 외국인 모드에서 한국인 모드로 전환되었다.
혼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에 앉았다. QR코드를 통해 들어간 사이트에서 주문을 할 수 있다. 결제는 식사를 마치고 하면 된다. 한국에서부터 자주 먹었던 탕짬면을 주문했다. 짬뽕 반, 탕수육 반. 나만의 식사를 위한 완벽한 조합이다.
얼큰한 국물과 적당한 해물과 채소 그리고 밑에 누워있는 면발을 바라본다. 심장이 뛴다. 온천욕을 즐긴 면들을 차가운 공기와 마찰을 시켜준다. 이어 해물과 채소와 섞여준다. 이 작업을 하기 전에 탕수육을 하나 입에 넣어 준다. 탕수육을 즐기면서 이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몸을 녹여줄 빨간 짬뽕 국물을 한 입 적신다. 얼큰함 때문에 피가 도는 느낌. 술을 먹진 않았지만 무엇인가 해장이 되는 기분이다.
집에서 식사를 할 때면 유튜브나 드라마 같은 영상을 틀어놓을 때가 많다. 혼자 살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하지만 이 날만은 아니다. 온전히 음식에 집중해야 한다. 오랜만에 즐기는 한국 음식이니까. 짬뽕과 탕수육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며 식사를 한다. 너무 한쪽 음식에만 치우치면 안 된다. 허겁지겁 먹다 보니 머리에서 땀이 조금 난다. 템포를 조절하라는 몸의 신호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온전히 비워진 그릇만이 남아있게 된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내리던 비는 그치고, 바람만 분다. 땀은 바람을 통해 날아갔다. 비를 참고 있는 구름 밑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바람 속에, 비를 머금은 숲 속의 향이 묻어있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화룡점정의 상태. 열심히 일한 끝에 누리는 소소한 보상이었다.
이제 빵보다는 밥이 더 좋아진 지금. 지금보다 어렸을 때 매일 햄버거, 피자, 치킨 등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호기로움은 세월이 흐르자 흰쌀밥과 찌개에 무너졌다. 햄버거와 피자를 주식을 이루는 나라에 왔지만 한국인의 밥상이 더 생각이 나는 요즘,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