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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Jan 06. 2023

캐나다 편의점 손님,  래리 할아버지의 조언

Life in Canada

모자를 푹 눌러쓴 채 60대로 보이는 손님이 편의점으로 들어오신다. 늘 구매하시는 식빵과 초코우유 그리고 버터를 들고 계산대에 올려놓으신다. 넉넉한 풍채와 걸맞지 않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나의 인사를 받아주신다. 일주일에 2~3번 빵과 우유를 주기적으로 사러 오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할아버지시다.


요즘 래리 할아버지와 자주 나누는 대화 주제는 경제다. 캐나다도 인플레이션이 심하고, 월세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에 사실 래리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래리 할아버지에게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하다고 투정을 부리면 나에게 맞다고 공감해 주셨다.


래리 할아버지는 본인의 인생에서 이런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2~3번 정도 겪으셨다고 한다. 이십 대 중반, 25센트 하던 식빵이 하루아침에 1달러로 상승했다고 한다. 그 당시 금리는 18.5%. 그때의 당혹감을 잊지 못하신다고 하셨다.


자신이 늘 먹던 음식 가격이 하루아침에 4배나 상승했다면 무슨 기분일까? 이십 대 중반의 래리 할아버지의 감정을 조금도 가늠해 볼 수 없었다. 질문 하나를 조심스레 물었다.


"2~3번의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어떻게 하셨나요?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옅은 웃음을 띄우며 말씀하셨다.


"그때 당시 저는 2개의 직업을 가져야 했습니다. 전기일과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는 일이었죠. 쉬는 날 없이 일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죠. 크지는 않지만 운이 좋아 안락한 집도 하나 샀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처럼 남에게 친절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세요. 친절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겨울날 손을 녹여주는 핫초코처럼 따뜻한 대답이었다. 이자를 많이 주는 계좌에 저축하세요. 근면 성실하세요. 투자 공부를 게을리하지 마세요. 등 진부한 조언을 하실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한 조언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자연스레 래리 할아버지와 대화를 할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힘들어요. 제가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줄 만한 것은 없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다는 말이 맞겠군요. 그저 친절하라는 말뿐입니다."



래리 할아버지는 나가셨다. 나는 웃으며 남긴 여운을 소진하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 친절하라는 말과 긍정적인 태도. 팽팽한 밧줄 위의 삶이라고 해도 웃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언행과 태도는 영어가 짧아도 이해할 수 있었고, 몸을 따르는 그림자처럼 고통은 늘 곁에 있으니 따뜻한 친절을 배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젊은이의 도덕이고, 의심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들이니까.


아마 당분간 몇 개의 계절은 큰 희망 없이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잠시 힘들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잔잔한 희망만 바라볼 수밖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버티셨던 래리 할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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