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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Dec 30. 2022

캐나다 편의점, 예상치 못한 선물

Life in Canada

편의점에서 두 번째 캐나다 겨울을 맞이했다. 많은 눈과 비가 내리고 있는 스쿼미시의 겨울. 눈이 많이 내렸다 싶으면 비가 내려 쌓인 눈을 녹인다. 그러다 이따금 북극의 한파가 찾아온다. 영하 18도까지 내려가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훌쩍 넘긴다. 캐나다 북부 지역은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5분 거리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얼굴은 이미 얼어버렸다.


사실 지루함과 권태감을 느끼고 있다. 일에 대한 적응은 일찌감치 끝났고, 적응된 일을 기계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의 큰 단점은 권태감이다. 찌뿌둥해진 정신과 권태감에 찌든 몸을 가지고 추운 편의점에 서있다. 날씨 때문인지 손님들도 발 길이 많이 줄었다. 어쩌다 온 손님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한다. 최근 2~3년 사이에 추위와 더위가 극한으로 심해졌다고 한다.


점심 시간대에 손님이 조금 몰린다. 빵과 우유를 사러 온 손님들과 아무리 추워도 담배를 피우겠다는 손님들. 그러다 매일 오시는 에바(Eva) 할머니가 오셨다. 매일 긁는 복권을 사신다. $10 긁는 복권을 4개씩. 운이 좋으신 날엔 $100이나 당첨되시긴 하지만 그만큼 당첨이 되지 않는 날이 많다. 


에바 할머니가 보이면 항상 사시는 복권을 준비해놨다가 드린다. 미리 준비해놨다고 말을 하면 웃으신다. 오늘은 에바 할머니는 포장된 선물 박스를 들고오셨다. 연말이기도 해서 선물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그 선물 박스를 나에게 내밀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과 함께. 순간적으로 나는 굳었다. 내 짧은 영어는 더 짧아졌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했던 것 같다. 뒤에 손님들이 있어 길게 말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에바 할머니는 편의점을 나가셨다. 그리고 선물을 확인했다. 꽤나 비싸 보이는 초콜릿이었다. 다른 손님이 이 모습을 보고 나는 선물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농담을 던졌다.


에바 할머니가 주신 초콜릿


다음 날, 에바 할머니는 어김없이 오셨다. 다행히 손님이 없어 약간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저에게 이러한 선물과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에바 할머니는 당신이 항상 웃고 친절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셨다. 가슴 한 구석이 핫초코처럼 따뜻해졌다. 


손님들에게 많이 받기만 했다. 어느 손님은 견과류와 과자 선물을 해줬고, 다른 손님은 수확한 사과로 잼을 만들어 주었다. 일은 권태로웠지만 사람들을 얻었다. "연말에 이렇게 일해줘서 감사해요!" 이란 말을 해주는 손님들까지. 이들은 손님들이 아니라 소중한 이웃들이었다. 혼자 일하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고,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그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녹지 않은 눈에서 따뜻한 흰 빛이 나오고 있다. 날씨는 춥지만 참으로 따뜻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과 이곳의 모든 이웃들이 내년에도 무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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