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Canada
이싼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캠프 파이어를 할 건데 오라는 문자였다. 문자를 받는 당일까지 나는 7일 연속 일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휴가를 갔기 때문. 오늘 밤은 나의 금요일이기에 누군가와 술을 한 잔 하고 싶었다. 나는 수락의 문자를 보냈다. 그 어느 날보다 퇴근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퇴근을 했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았다. 걷고 싶은 날씨였다. 이싼이 말해준 '낚시꾼의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종종 자전거를 타고 들려 산책을 하곤 했다. 강이 흐르고 모래사장이 있고, 탁 트인 시야엔 산이 보인다. 울창한 숲까지 있어 로컬 사람들이 산책로로 주로 사용된다. 여름엔 캠프 파이어를, 가을엔 낚시꾼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현지인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이다.
이싼이 보였다. 주변에 처음 보는 친구들과 불이 보였다.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캐나다에 살다 보니 나를 소개하는 일이 많아졌다. 자기소개의 민족인 한국에서 온 나는 정해진 레퍼토리로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그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이란, 인도, 칠레, 캐나다, 아일랜드. 대부분이 영어권 나라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내가 살아온 곳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어느덧 뒷산으로 넘어갔다. 어둠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만큼 더 불에 가깝게 붙었다. 이싼은 준비한 햄버거 재료들을 하나씩 꺼냈다. 햄버거 패티와 베이컨을 모닥불에 굽기 시작했다. 야채를 썰고, 빵을 꺼냈다. 패티가 익는 동안 우린 대화를 이어갔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같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그들도 영주권을 위해 나처럼 일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한 명은 피자집에서, 이싼은 브런치 카페에서 2년 반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편의점 옆 브런치 카페가 있다. 그곳에서 일하던 이싼은 종종 담배를 사러 왔었다. 지나가다 평범한 인사말만 주고받던 우리가 친해진 계기는 축구였다.
이싼이 축구를 보고 있던 나에게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자신도 좋아한다며 친해졌다. 이싼의 국적도 대한민국의 영원한 라이벌 이란이었다. 그는 내게 수원삼성 팬이라고 물었고, 나는 웃으며 어떻게 수원삼성을 아냐고 반문했다. 이싼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수원삼성 경기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시아 축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이싼도 캐나다 영주권을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 이싼은 브런치 카페에서 1년 반동안 설거지만 했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음식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음식물 쓰레기통이 부서졌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그 쓰레기들을 혼자서 다 치웠다고 한다. 이싼은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도 혼자서 남아 치워야 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 말을 할 때 이싼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때까지 버텼었다. 충족도, 아름다움도 없는 시간들을.
다들 자신들의 나라를 사랑했다. 자신들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각자의 나라를 말을 했다. 그들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이 좋지만, 미래를 위해선 이곳에서 일을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늘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힘이 되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한국친구는 사실 없다. 그렇다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나도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남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너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말은 함부로 꺼내면 안 되는 말이 되었다.
이싼의 햄버거가 완성했다. 브런치 카페에서 일한 짬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모닥불로 구운 햄버거 패티와 베이컨은 최고였다. 내 인생의 최고의 햄버거였다. 우린 농담과 진지함을 오가며 이야기를 했다. 어눌한 발음과 엉터리 문법에도 우린 대화를 이어갔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영어에도 우린 귀를 기울였다.
하나둘씩 집으로 갔다. 하지만 나와 이싼과 칠레에서 온 친구 호르헤는 불이 약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조용히 타고 있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도 했고,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호르헤는 6월에 아빠가 된다고 했다.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비록 오늘 처음 보긴 하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하자 그도 웃으며 너도 그렇다고 했다. 마지막 불씨가 꺼졌다. 가져온 물건들과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닥불 같은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