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스 Feb 13. 2023

오로라 여행의 이유

Life in Canada

캐나다의 매력은 하늘이다. 대도시에 살던 내가 제대로 된 하늘을 볼 수 있는 날들은 많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여유롭게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늘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보고 있거나, 앞만 바라봤다. 언제나 나의 시선은 네모난 작은 화면에만 향했었다.


한동안 캐나다 휘슬러에서 살았었다. 휘슬러 호수에서 찬란한 여름의 하늘을 올려봤다. 청량함 그 자체였다. 다양한 구름의 모양과 적당한 구름의 속도, 그리고 찾아오는 평온함들. 그간 긴장했던 내 몸들을 풀어주는 하늘이었다. 하늘에도 표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긴 시간 호수 근처에 앉아 하늘을 넋 놓고 바라봤다.


집 근처 호수


어느덧 같은 일을 한 지 1년 6개월.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과 작지만 살가운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고일대로 고여버린 일상은 나에게 어떠한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 새로이 밝아오는 하루의 진부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 사이, 나의 시선의 배경은 색채를 잃어버렸다. 뻐근한 일상이 주던 안정감은 나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나에게 새로운 행복의 환희가 필요했다. 


습관적으로 들어간 인스타그램. 우연히 본 사진에는 오로라가 빛나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의 인생 하이라이트 중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문득 어스름한 새벽하늘에 남아있는 오로라의 뒤편이 궁금해졌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별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타올랐다. 흘러간 청춘을 불러오는 먼 훗날, 젊은 날의 추억이 주머니보다 가볍다면 참을 수 없이 후회할 것만 같았다.


급하게 오로라 여행을 알아봤다. 생각보다 비쌌다. 오로라 관측이 가능한 캐나다 도시는 엘로나이프와 화이트홀스. 엘로나이프보다 화이트홀스가 조금 저렴했다. 호텔도 비행기도 즉흥으로 하기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게다가 방한복까지 필요했다. 화이트홀스의 밤은 -40도까지 떨어지기에 방한복은 필수였다. 


즉흥을 마음 먹은 곳


언제나 즉흥엔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낭만이 아닐까. 즉흥은 젊은이의 의무이다. 낭만 없는 청춘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검색을 해보니 다른 사람들과 방은 같이 쓰지만 그나마 저렴한 투어가 있었다. 투어 광고의 매력적인 문구가 있었다. 


3일 체류 시 오로라 관측 90%!

허위 광고가 의심되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을 함부로 예측하다니. 하지만 저 문구가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도 존재했다. 3박 4일의 휴가를 받아냈다. 우밴유라는 다음 카페에서 한국인 동행을 찾았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화이트홀스로 여행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저 없이 연락을 했다. 패키지 투어 회사의 컨펌을 받고 투어를 진행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과의 패키지여행이었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었다. 걱정은 됐지만 나의 운을 믿어보기로 했다. 완벽한 계획보다는 재밌어 보이는 불확실성에 몸을 맡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출발날 공항에서 투어 멤버를 만났다. 보라, 혜성, 단비였다. 보라와 혜성은 남매였고, 단비는 어학연수 온 학생이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했다. 보라는 캐나다 워홀을 마치고 한국에서 온 동생 혜성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혜성이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난생처음 듣는 질문을 했다. 가령 왜 이렇게 키가 커?(난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만큼 키가 크지 않다.), 형 키를 조금 나에게 나눠줘. 등 한 번도 듣지 못한 대답들을 했다. 혜성이는 여행 내내 질문을 하는 친구였다. 꽤나 신선했다.


단비는 캐나다 학교에서 영어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돌아가는 학생이었다. 말투가 매력적인 친구였다. 상냥한 말투 속에 엉뚱함이 묻어있었다. 가끔 앞뒤가 다른 말을 하곤 했다. 힙합은 좋아하지 않지만 로꼬와 그레이는 좋다는 등 엉뚱한 말을 하곤 했었다. 순수해 보이는 친구였다. 


오랜만에 모르는 한국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말을 했다. 눈에 보이는 허세들을 빼고 자기소개를 했다. 헤어짐이 약속되어 있는 친구들이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린 그렇게 만났고, 유콘의 작은 마을 화이트 홀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캐나다의 안녕이 다가오는 여행객과, 여행이 필요한 현지인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