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Canada
유콘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정신없이 잠들었다.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그들이 주는 빵과 음료는 놓치지 않았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먹었다. 공항엔 한 백인 남자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밴이었다. 투어를 안내해 주시는 직원이었다. 한인 업체에 예약을 했기에 한국인을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다른 후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캐리어가 나올 때까지 밴과 스몰 토크를 나누었다. 밴은 우리에게 본인이 찍은 오로라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 속 오로라는 내가 찾던 오로라였다. 불과 몇 주전에 찍힌 사진이었다. 낙관적인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갑자기 캐리어가 나왔고, 우린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에 있는 버스로 향했다.
확실히 추웠다. 밴쿠버의 추위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따금 부는 바람은 겨울을 더 겨울답게 만들었다. 하지만 밴의 설명은 오늘은 날씨가 굉장히 따뜻하고 좋은 편이라고 했다. 화이트홀스에는 -40도에서 -5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날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그곳에 지냈던 2월 초의 화이트홀스의 온도는 -18도였다. 밴은 이상 기후라고 덧붙였다.
작년 여름에 이곳으로 온 밴은 한 겨울에는 해가 3~4시간 정도밖에 뜨지 않고, 한 여름엔 해가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주 새벽이 되면 약간 지긴 하지만 해가 산에 걸쳤다가 다시 올라오는 기분. 화이트홀스의 여름은 오로라를 관측하기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고 했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해가 지지 않는 날, 백야. 빛이 없어야 잠을 청할 수 있는 나는 그곳에서 여름을 지내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이 타올랐다. 과연 내가 잠을 잘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깊게 잠들 수 있을지를 상상해 봤다. 언젠가 화이트홀스의 여름을 기대해야지.
호텔로 갔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미리 예약한 방한복 받아 사이즈 체크를 했다. 오로라 투어는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3시까지다.
무료했던 화이트홀스의 첫 번째 낮. 멤버들과 쌀국수를 먹고, 카페에 들어갔다. 추위를 녹여줄 음료를 주문했다. 나는 유콘의 맥주를 주문했다. 알코올 도수는 6.5%, IPA의 한 종류였다. 밍밍한 맛으로 시작해 끝은 쓴 맛이 서려있었다. 이 맛을 아려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맛이었다. 마치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신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이것만 찾을 것 같았다. 낮잠을 위한 맥주로는 제격이었다.
낮 시간동안 하기 위한 옵션 투어가 따로 있었다. 허스키 개썰매, 유콘 맥주 브루잉 투어, 온천, 야생동물투어, 스노우 모빌 등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다. 각자 취향에 맞게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액티비티는 많았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즉흥의 대가를 지불하니 지출의 출혈이 컸다. 그렇다고 화이트홀스의 낮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진 않았다.
온천 + 야생동물 옵션투어 세트가 있었다. 각각 하나씩 선택이 가능했지만, 나는 세트를 선택했다. 지친 몸을 화이트홀스 온천물에 지지고 싶기도 했고, 이곳의 자연이 기대가 되었었다. 다행히 스케줄은 야생동물 투어를 마치고 온천으로 가는 코스였다. 스케줄은 세 번째 날, 낮이었다. 가격이 부담되었지만 선택했다. 이곳에서 생길 추억들을 생각하면 200불은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이곳에 온 지 두 번째 낮, 밴은 오전 11시부터 우리를 불러냈다. 전 날밤 오로라 투어를 다녀와 새벽 4시에 들어왔기에 충분한 수면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집합 이유는 유콘 투어였다. 이 투어는 모두가 기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투어이다. 투어의 단점이지만 시키면 그대로 해야 했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를 수밖에 없는 병아리들이었다. 밴이 운전하는 버스로 유콘 방문자 센터를 갔다. 그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들었다.
오로라. 라틴어에서 '새벽'이라는 뜻인 오로라(Aurora)는 1621년 프랑스 과학자 피에르 가센디가 로마 신화에 등정하는 여명의 신 '아우로라(Aurora)에서 명명했다. 캐나다에서는 놀던 라이트(Northern Lights)라고 주로 불린다. 스웨덴, 캐나다, 러시아, 알래스카 등 주로 고위도 지역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관측된 사례가 있다. 2003년 10월 30일 새벽 유례없는 태양 자기 폭풍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관측이 되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옛 서적에도 오로라로 추정되는 글들이 기록되었다.
화이트 홀스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낚시를 하는 곳, 목재로 지어진 오래된 교회 등. 기본적으로 100년 이상 된 곳들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마을 곳곳에 숨어있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공간에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시간이 흘러도 기록되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 앞에 영하 40도 추위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다음 세대까지 퍼지는 이야기들. 귀를 기울이다 보니 몇 개의 계절동안 가슴에 품을 만한 것들이 있었다.
분명 내가 살아왔던 곳과 달랐다. 하지만 맥락적으로 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와 우리가 특별하게 보이는 면을 들여다보면 그 속엔 늘 인간다움이 묻어있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