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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Apr 17. 2023

캐나다에서 스키를 타다가 문득

Life in Canada

3년 전, 휘슬러에서 스키를 탔다.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스키를 탔던 경험은 몇 년 동안 잊히지 않았다. 어깨동무하고 있는 눈 덮인 산이 주는 하얀 풍경. 산의 나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절대적인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산을 내려와도 한동안 여운이 가라앉지 않았다. 


마르틴 아저씨에게 스키 강습을 받았다. 그는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 자주 오는 손님이다. 쉬운 영어로 나에게 설명을 해주셨다. 안전 관련해서는 단호했다.  스키를 타다가 중간중간 사진과 영상을 찍어주셨다. 마르틴 아저씨는 아무리 경사가 급해도 평지를 걷듯 내려갔다.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20년 스키 강사 바이브가 느껴졌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가만히 서서 그토록 황홀한 자연경관을 봤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산 꼭대기였지만 숨쉬기가 편안했다. 쌓인 눈은 4월의 햇빛을 받아 여기저기 흩뿌리고 있었다. 3년 전처럼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나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무엇인가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이 아니라 나일 것이다. 광활한 자연에게 3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넋 놓은 채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엄청 큰 존재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 고민 그리고 성취감과 상실감조차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살아온 인생이 가장 미화되는 곳은 산 정상이지 않을까. 휘슬러 산들은 내가 가진 어떤 것들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청난 경사가 내 앞에 놓여있었다. 이곳을 내려가야 했다. 분명 초보자 코스였다. 캐나다 스키장은 이런 경사는 초보자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마르틴은 집 앞 슈퍼 가듯 이미 내려가 있었다. 더 이상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넘어질 용기가 필요했다. 한 번의 숨을 몰아쉬며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마르틴이 밑에서 보고 있었다. 내 스키 부츠는 마르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르틴은 스키를 타면서 무서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쪼는 순간 넘어진다고. 멈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속도가 필요하니 그냥 가라고. 그 속도는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몇 번 넘어지고 나니 두려움이 애매해지고 긴장감도 흐려졌다. 정신을 차리니 넘어지지 않고 마르틴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직접 부딪히면 걱정했던 것만큼 큰 일들이 아니다. 캐나다 오기 전엔 사실 많이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오니 내가 상상했던 안 좋은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름 나만의 발자취도 남겼다. 시작을 하게 되면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나에게 망설임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속도가 붙어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갑자기 높아지는 속도를 즐겨야 했다. 주저하는 순간 넘어진다. 하지만 이런 급경사에서 몇 번 넘어지다 보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쌓인 눈들이 나를 보호하는 기분. 많이 넘어져야 잘 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넘어지지 않으려고만 했던 것 같다. 결국 앞으로 나아가려면 넘어질 각오로 시작을 해야 한다. 



안정적인 존이 주는 중력에 우린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그 안정적인 존에 있는 것이 잘 못 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이런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지금 내게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나만의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린 넘어질 용기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휘슬러 스키장은 오후 4시에 문을 닫는다. 어느덧 폐장시간이 되었다. 기울어지는 해가 아름다운 휘슬러 산을 옅은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 모습 또한 몇 개의 계절동안 곱씹을 것 같다. 이곳에서 마르틴과 스키를 타고 있음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적절히 섞였다. 이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내 안에 품을 추억 한 줌을 얻었는데. 아름다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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