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Canada
편의점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긴 금발의 여성과 옆엔 듬직한 곰 같은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옆엔 초등학생인 아들도 있었다. 외국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 엄마는 학창 시절에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이뻤고, 아빠도 듬직했다. 엄마는 지나 아빠는 트래비스 그리고 아들은 맥스. 그들은 내가 가족을 꾸린다면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항상 웃으면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날씨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와 한국에 대해 물었다. 나는 캐나다 문화에 대해 물었고, 그들은 친절하게 천천히 말해주었다. 그들은 올 때마다 로또를 사고,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나는 그 어느 손님보다 신중을 가하며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어느 날, 그들이 가게로 왔다. 늘 같은 웃음으로 나에게 인사하는 트래비스 가족. 지나는 비니를 쓴 채 등장했다. 나는 스몰토크를 한답시고 헤어 스타일이 바뀐 것을 주제 삼아 말을 꺼냈다. 돌아온 대답은 내 얼굴은 붉히게 만들었다..
지나의 몸에서 암이 발견되어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벼락같은 그 말을 듣자 나는 흠칫 놀랐다. 나는 재빨리 사과를 했다. 그들은 괜찮다고 말하며 나에게 웃었다. 지나는 40대처럼 보였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고, 그들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 그런 것 같다며 장난을 쳤다. 그 이후로 나는 그들이 올 때마다 병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는 주기가 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던 그들은 몇 주가 지나야 한 번씩 왔다. 지나가 올 때면, 똑같이 대하려고 했다.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나가 빌린 책과 맥스가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있는 것 같다는 등 일상을 이야기했다. 지나 주위 사람들이 그녀에게 울상 짓는 모습이 뻔히 보였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그 전과 같은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처럼 늘 웃고 친절하게. 그렇게 1년 반이 지났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구름에서 비가 오는 어느 날, 트래비스가 혼자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나는 어때요?"
"그녀는 버티는 중이에요. 벌써 2번의 수술을 받았고, 6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지나는 강한 사람입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몸은 좋아지고 있어요."
지나는 이겨낼 거라고 말했다. 아직 젊고, 그녀는 강하지 않냐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였다. 그 어떠한 말도 힘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창문 밖을 봤다. 주차되어 있는 차 안에 지나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색채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창문에 기대고 있었다. 무엇인가 버티는 모습. 그녀는 엄마였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항상 웃던 지나. 처음으로 웃지 않는 날이었다.
변덕스러운 화가가 하늘을 그리듯 갑자기 비가 그쳤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날씨가 바뀌었다. 구름 사이에 붉은 석양 한 조각이 나왔다. 붉은 한 줄기 빛은 그들이 타고 가는 차를 향하고 있었다. 그 기류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비는 물러갔지만, 청량감이 대기에 남아있었다. 근거 없는 낙관적인 희망을 느꼈다. 지나는 이겨낼 것이고, 맥스는 웃음을 되찾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타고 간 차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있었다.
아직은 쌀쌀한 봄의 어느 날, 지나가 드디어 비니를 벗었다. 아직은 짧은 머리지만, 그녀의 표정은 당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왠지 모를 만족감도 들어있었다. 나는 지나에게 비니를 벗은 것에 대해 축하한다고 했고, 그녀는 이제 눈썹도 자란다며 내게 자랑을 했다. 그녀는 정말 잘 해내고 있었고,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은 듯 보였다.
애석하게도 우리들의 인생과 죽음에는 실습이 없다. 그래서 늘 어렵다. 지나는 아직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기엔 너무 이르다. 물론 영원히 울릴 노래는 없다. 모든 것은 바람이 싣고 가겠지. 하지만 위태롭고 아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지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고 잘 해낼 것이다. 그러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