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자전거 국토 종주
어느덧 3일 차. 생각보다 많이 오지 못했다. 준섭은 심한 역풍과 예전과 다른 몸뚱이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십 대 초반 인천-부산 국토 종주 2번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2번보다 동해안 종주길이 훨씬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인천-부산 국토 종주 경험이 있는데, 준섭과 같은 생각이었다.
이십 대 초반과 이십 대 후반의 몸은 달랐다. 같은 이십대지만 조금씩 달라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보다 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보면 쯧쯧 혀를 차겠지만, 우린 그렇게 느꼈다. 나이 먹었음이 서글픈 순간은 과거의 자신에게 졌을 때인 것 같다.
역풍을 맞으며 계속 달렸다. 바람에 산산이 부서지는 준섭의 멘탈은 이제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변한 듯했다. 내비게이션 맵핵을 써서 그런지 잘 따라왔다. 그러다 경상도와 강원도 사이쯤부터 바람은 잠잠해지더니 '강원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은 멈추었다. 신기할 정도로 바람은 선선함으로 바뀌었고, 우린 안도했다. 준섭은
"이제야 자전거 탈 맛 나네. 이래야 국토종주지."
"그니깐 말이야. 이제 탈만하다. 이랬으면 통일전망대까지 갈 수 있었는데..."
우린 어젯밤 치맥을 하며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삼척까지만 가는 것으로. 대호의 휴가도 끝이 났고, 취준생인 나와 공무원 준비생인 준섭도 더 이상 시간과 돈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린 오늘 삼척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통일전망대까지의 목표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물과 음료수도 넉넉하게 샀다. 비와 바람, 햇빛과 구름과 같은 자연의 경계선을 지나갈 수 있었다.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미래만 생각하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순간을 사는 것 같았다. 역시 자연에는 직선이 없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인증센터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그리고 파도를 치는 바다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증명하듯 파도는 계속 어딘가에 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맑은 하늘과 파란 바다 사이를 떠다니는 구름의 그림자. 그 그림자에서 빚어지는 파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은근 위로가 되었다.
위로가 되는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달렸다. 그리고 삼척에 도착했고 우린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여행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오랜만에 순간을 살았던 여행의 끝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