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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y 22. 2023

서로 다름에 익숙해지기

작년 이맘때 즈음에 딸아이(B)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입학 전 상담이 있었다. 모든 입학예비생들 대상이었다. 학교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B가 좋아하는 과목이나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어느 정도 상담이 끝났을 때 상담을 담당했던 교사가 B에게 엄마와 단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 밖에서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B가 나가자 혹시 아이에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당시에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다. 당연히 없다고 이야기하고 시간이 흘러 작년 9월에 B는 입학을 했다.


등교 첫날, 세컨더리 첫째 날이 어땠을지 궁금한 마음을 가득 안고 학교 근처에서 기다리는데 B가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표정이 잔뜩 굳어있다.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그래서 침착하게 물어보니 반에 아주 소란스러운 아이(G)가 있어서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책상을 두드리기도 하고 방귀도 마구 뀐다고 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그렇게 한 달 동안은 매일 하굣길에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G에게 자폐스펙트럼과 ADHD가 있는 것 같다. B는 이 반 구성으로 11학년까지 간다는데 5년 동안 그 아이와 같은 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워했다. 그래도 나와 남편은 섣불리 학교에 이메일을 보내지 않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심 딸아이 반편성 운을 탓했다.


어느 날 G가 스페인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소리를 엄청 크게 질러서 학생캐어센터에 불려 갔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하루 벌을 받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딸아이에게서 G에 대한 불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가끔 수업시간에 그 아이가 방귀를 엄청 크게 뀌었다는 말만 하곤 했다.


그러다 커버수업(결근한 선생님 대신 들어가 수업지도)을 며칠 하며 들어간 반마다 살펴보니 딸아이 반의 G와 증세는 조금 다르지만 조금씩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틱 반응을 보이는 아이, 불안해서 피짓장난감을 계속 주무르는 아이, 공황장애가 몰려와 갑자기 밖으로 나가 한참을 서있다가 들어오는 아이 등등.

그때서야 알았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입학 사전 상담을 통해 특별 주의가 필요한 학생들을 반별로 균등하게 배정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학교에서 그런 아이들을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영국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B에게서 G에 대한 불평은 들을 수 없다. 이제 재미있다고 했다. 나도 딸아이 반에 수업을 몇 번 들어갔는데 확실히 그 아이가 눈에 띄기는 하나, 수업 집중력도 높고 과제 수행 능력도 뛰어다. 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본인이 실수를 하면 그것에 대한 반응이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럴 때 다가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다시 차근차근해보라고 하던가 아님 왜 실수를 했는지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바로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 과학을 제일 좋아하고 수학도 반에서 top이라고 한다.


B가 좋아하는 과학선생님이 5월까지만 일하고 다른 학교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에서 그 과학선생님을 복도에서 마주쳐서 B가 많이 속상해한다고 하니,

'걱정 마세요. 어떤 선생님이 와도 B는 잘할 거라고 이야기해 줬어요. 그게 사실이고요. 그리고 혹시 몰라 그 반에는 다른 반보다 제일 먼저  제가 학교를 떠나는 것을 얘기해 주었어요. 아무래도 G가 충격을 받을 것 같아 미리 얘기해 주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학생을 캐어하는 담당 선생님도 아닌 과목 선생님인데 학생들 하나하나에 대한 배려가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그날 딸아이에게 과학선생님이 떠난다는 얘기했을 때 G반응이 어땠냐고 물으니 수업시간에 소리 내서 울었다고 했다.


얼마 전에 아이들이 지리수업 현장학습을 다녀왔다. B는 단짝친구인 T와 G, 셋이서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G가 너무 즐거워하는 걸 보는 게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G가 핸드폰 번호도 공유했다며 좋아했다.


시간을 같이 공유하며 이해하고 익숙해지니 그 친구의 다름이 불편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이가 불평할 때 기다리고 학교에 이메일을 보내지 않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이렇게 학교에서 아이들 인종, 민족, 종교, 신체적 조건이 다르더라도 서로 인정해 주고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인류애로 충만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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