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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03. 2023

공식 시험 2주 차를 보내며

gcse+gce(a-level)

그래머스쿨은 외국어 한 개는 무조건 해야 한다. 그리고 종교도 필수로 시험을 봐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기독교와 이슬람 두 과목을 본다. 종교과목은 매우 잘 볼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평균점 이상을 받아야 전체 과목 평점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어쨌든 공부해야 한다.


이슬람시험 과목이 있던 오후, 시험 시작 5분 전에도 나의 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옆방을 기웃거렸는데 방 네 개 중 한 곳만 학생이 들어와 있고 나머지 세명은 모두 나타나지 않았다. 좀 기다리다가 시험 시간이 다 되어 감독관 하나가 매니저에게 문자를 넣었다. 그랬더니 세 학생 모두 발작이 와서 시간이 걸릴 테니 각자의 방에서 기다리라는 답장이 왔다.


10분 정도 지난 뒤에 내 학생과 옆방 학생이 방으로 들어왔다. 내 학생은 들어오면서 늦어서 미안한데 화장실에 좀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어서 부담 없이 천천히 다녀오라고 하니 얼른 뒤돌아서 문을 열고 나갔다. 뒤돌아선 학생의 뒷모습에서 잔디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도 잔디밭에 앉아서 시험 시간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발작이 와서 잔디밭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내 학생이 돌아올 동안 옆방에서 학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학생캐어센터 직원이 같이 들어가 괜찮다고 옆에 있어줘도 아이의 울음에 지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또 한 명의 캐어 직원이 왔다 갔다 하고 울음이 잦아지나 싶더니 곧 그 학생은 시험을 포기하고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그사이 내 학생이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물병에 물이 없는데 물을 뜨러 가도 되냐고 묻는다. 다녀오라고 학생을 보냈다. 그런데 물 뜨러 간 학생이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아 같이 갔어야 하나... 걱정을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창밖으로 학생이 옆 건물에서 나와 이 쪽 건물로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학생이 준비가 되어 바로 시험을 시작하자고 알리고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생이 초반엔 조금 쓰는 것 같더니 영 집중하지 못하고 시험지만 넘기다가 시험 시작 20분 만에 시험지를 덮어버렸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시험을 종료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잘 해오는가 싶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시험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학생이 말을 걸었다.


'오늘 오후 시험만 있어서 30분 전에 학교에 도착해서 친구들이랑 잔디밭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시험시간이 다가오니 불안이 몰려왔고 그러다가 발작이 왔어요.'


'괜찮아, 다음엔 늦게 돼도 불안해하지 마. 넌 쉬는 시간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늦게 시작해도 아무 문제없어.'


'그래도 갑자기 너무 불안했어요. 근데 이 시험 저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 차라리 속 시원해요. 이제 종교과목은 이걸로 끝이니까요.'


'그래, 축하해. 내 생각에도 종교과목은 알고 있으면 되지 뭘 시험까지 보나 모르겠다. 오늘 집에 가서 잘 쉬고 내일 아침 시험에 보자'


'네, 내일 봐요~!'


이렇게 밝게 헤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1번 방의 학생은 그날 앰뷸런스가 온듯하다. 이렇게 1:1룸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각자 모르는 척할 뿐이지 다른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고 본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항상 불안감을 안고 있다.


다행히 다음날 네 명 모두 제시간에 오전 시험을 보러 왔다. 1번 방 학생은 시험 개시 30분 만에 중압감을 버티기 힘들어 감독관과 숲으로 갔다. 내가 담당한 학생은 영어문학시험이라 한 시간 반 넘게 열심히 답을 쓰고는 45분이 남은 상황에서 더 이상은 손이 아파서 쓸 수가 없다고 시험지를 덮었다. 그래도 꽤 자신 있는 모양이다. 워낙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라 영어나 역사 과목은 자신이 있다고 했다. 한 번의 발작이 왔지만 학생이 2주 차 시험을 잘 마치게 돼서 다행이다. 잔디부스러기가 어지럽혀 있던 그 아이의 등이 자꾸 눈에 밟혀 시험 말미에 그 아이의 이름을 중국어와 한국어로 적어보았고 학생에게  내밀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너무나 감동한 얼굴을 하며 종이를 바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오래오래 간직하겠다고 했다. 그것으로나마 아이의 마음이 즐겁고 따뜻해졌기를 바라본다. 일주일의 짧은 방학을 보내고 다시 2주간 시험이 치러진다. 나의 딸도, 내 학생도 모두 모두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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