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un 07. 2023

저승사자와 부동산 팻말

윌리엄 볼콤의 우아한 유령

내가 살고 있는 거리, 알링턴웨이에 집들은 대부분 앞마당을 가지고 있다. 앞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거나 나무가 우거져 있으면 대부분 어르신들이 살고 계시다는 거다. 젊은 사람들은 차량을 쉽게 주차하기 위해 앞마당을 다 들어내고 아스팔트나 벽돌로 포장을 한다. 그런 집을 지날 때면 왠지 집이 벌거벗은 것 같고 벽돌과 콘크리트의 딱딱하고 차가움만이 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다양한 화초와 나무들로 이루어진 앞마당은 주인이 차가 한 대 이상은 필요 없고,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다.


한 번은 둘째를 학교에서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 어르신이 집 앞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전지가위가 좋아 보여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나도 그런 게 필요한데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하니 어르신이 이것 말고도 자기 차고에 많다며 차고에 가서 요즘 가게에서 볼 수 없는 골동품처럼 보이는 각종 정원관리용 도구들을 가지고 나와서 신나게 보여주신다. 그날 오후 3시가 넘어서 까지 마치 사람 구경은 처음 해보거나 사람과의 대화가 처음인양 신이 나서 설명하시는데 나도 같이 행복해졌다.      


알링턴웨이의 중간쯤에 헤딩리로드로 갈라지는 부분에 사시는 노부부가 있다. 처음 이사 와서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 보면 항상 캐러반을 꾸리거나 손을 보고 있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었다. 그러다간 여행을 가셔서 캐러반이 보이지 않은 기간이 꽤 되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또 손보고 하는 것을 2년 동안 보고 참 멋지게 사신다고 생각했다.


딸아이 친구인 에밀리아가 그 바로 옆집에 사는데 하굣길에 그 아이와 갑자기 너무나 무미건조하게 자기 이웃들에 대해 얘기하더니 그 42호 할머니가 암에 걸렸다고 했다. 그 뒤로 지나갈 때마다 캐러반을 일부러라도 쳐다보는데 꼼짝을 않고 주차되어 있는 모습에 마음이 내내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전동 의자에 앉아 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었고, 어느 날 아침에는 구급차가 그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알링턴웨이에 구급차가 온다는 것은 대부분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다. 구급차가 자주 모습을 보이고 그러다가 부동산에서 박아놓은 'SALE'이란 팻말이 보이면 그 집 어르신이 얼마 전에 세상과 이별을 했다고 보면 된다. 그 후 2년이 흘렀지만 아직 42호에는 부동산 팻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신다는 보장은 없다. 할아버지 혼자 사시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동안 두 분이서 여행 계획 짜고, 캐러반 꾸리고, 두 분 만의 추억을 쌓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셨던 삶에서 혼자 남겨진 할아버지는 어떻게 남은 여생을 홀로 헤쳐가실지...

   

우리 아랫집도 작년에 구급차가 두 번 보이고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뒤로 1년도 안 돼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곧 부동산 팻말이 보였다. 지금은 벌써 젊은 커플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들어와 살고 있다.


오늘 오전 시험감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침에는 보이지 않던 부동산 팻말이 보였다. 둘째 아이 하굣길에 가끔 뵈었던 할아버지 집으로, 날이 좋으면 정원에 나와 무릎을 꿇으시고 장미와 각종 꽃을 가꾸는 할아버지 모습을 뵌 적이 있었는데, 그 집에 부동산 팻말이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정원을 가꾸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곧 그 아기자기한 장미 정원은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질 것이다. 더운 여름 산책하는 개들 마시라고 물도 떠서 대문 앞 길에 내놓곤 하셨던 따뜻한 분이셨다.


이렇게 내가 딸아이 등하교를 위해  4년 동안 걸어 다녔던 헤딩리로드와 알링턴웨이는 대충 어떤 사람들이 집에 살고 있는지 파악이 된다. 그리고 지나가다 한두 번 눈인사 또는 간단하게 Hi와 Hello를 주고받았던 사람들이라 저승사자처럼 구급차가 나타나고 부동산 팻말이 보이면 그 집이 어찌나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지 시선을 오래 두기 힘들어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게 된다.



볼콤의 우아한 유령 by 양인모 바이올린

양인모의 우아한 유령은 그야말로 최고라 손꼽고 싶다. 작곡가 발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곡으로 알링턴웨이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신 모든 어르신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o2EmLXjj4

작가의 이전글 사랑방 도서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