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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22. 2023

영국의 칼부림 범죄

어제 오전 시험감독을 위해 출근을 했다.

평소 텐션이 높아 늘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매니저의 얼굴이 조금은 굳어보였다. 월요일 아침이라 그렇겠거니 하고 내가 담당하는 학생 두 명의 시험지와 강당 담당이 아직 오지 않아 강당 시험지를 받아 들고 대신 세팅을 하고 있었다. 30분이면 보통 감독관들은 각자 배정된 곳에서 세팅을 시작하곤 하는데 헬렌이 아무 소식이 없다. 그러다가 40분이 넘어 안 좋은 얼굴로 들어와서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매니저 아들이 17살인데 지난주 토요일 시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갔다가 칼을 든 괴한들에게 자동차키와 핸드폰을 뺏겼다고 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인 나의 매니저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분명 헬렌은 매니저와 더 오래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바로 얼굴표정만 보고도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 공원은 우리 시에서 가장 큰 공원이며 시내랑도 가깝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크로스컨트리 달리기 대회를 했으며 큰딸이 일 년에 두 번 그곳의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기도 해서 가는 곳이고도 하다. 넓은 부지에 각종 스포츠 시설이  잘 분포되어 있고 수영장을 끼고 있는 레저센터와 큰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도 갖추고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대낮에 칼을 든 괴한이 나타나다니... 


영국은 해마다 칼부림 사건이 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0년대에는 55000건이었던 것이 작년엔 좀 줄어서 5만 건이 좀 넘지만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장소와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추세에 있다. 칼부림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고 위협용일 수도 있다.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원에서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막상 집 밖을 나서는 것이 참 무서운 곳에 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런던에서 2명을 칼로 찌른 괴한을 체포했다는 BBC뉴스가 떴다. 런던 한 도시만 놓고 보더라도 일 년에 칼부림 사건은 만건이 넘게 일어난다. 하루에 약 30건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프랑스 안시에서 일어났던 칼부림 사건도 그렇다. 정확한 타깃이 없이 그냥 칼부림 자체가 목적이었던 사건으로 어린아이 넷과 어른 둘이 크게 다쳤다. 그곳은 재작년에 가족끼리 캠핑을 가서 방문했던 도시로 비현실적이리라만큼 아름다웠던 곳이다. 


그리고 얼마 전 영국의 유명한 대학인 노팅엄대학 근처에서 두 명의 대학생과 대학의 캐어담당자가 칼부림 사건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 


뉴스에서만 보거나 듣는 사건들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내가 매일 보는 내가 아는 사람의 아들도 공격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나는 16살과 13인 딸 둘이 있다. 남편은 아이들이 어딜 가든 운전을 하고 데려다주고 아직도 시내에 자기들끼리 나가본 적이 없다. 우리는 쇼핑을 가기 위해서는 가게가 문을 여는 9시에 바로 시내로 나가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인 11시 즈음 쇼핑을 끝낸다. 그렇다고 내가 사는 곳이 많이 형편없는 지역이라서가 아니다. 접근성이 좋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작년에 가족 모두 한국엘 다녀왔다. 어느 날 남편이 오후 늦게 혼자서 산책을 하고 들어오더니,

'너무 이상해. 밖에서 걷는데 그 누구에게도 위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인지 모르겠어. 이대로 영국에서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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