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un 01. 2023

사랑방 도서관

나는 영국의 남동쪽 켄트라는 카운티에 산다. 이곳에만 도서관이 99개가 있다. 아주 큰 도서관은 두 개정도 되는데 한국의 큰 도서관을 상상하면 안 된다. 동네에 사랑방처럼 있는 도서관의 두 배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도서관은 대부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쇼핑센터나 시내 중심에 위치한다.


작은아이는 영어를 이해는 해도 말하기를 거부하며 한국에서 지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도 채 마치지 않고 영국으로 왔다. 오기 전에 간단한 리딩트리 책을 읽고 필사를 하도록 시켰었다. 그래도 꽤 잘 읽는다 싶어서 안심을 하고 있을 때 허를 찔리고 말았다. 아빠가 영국인이니 그동안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서 뇌에 축적된 영어가 있는 데다가 그림책이다 보니 대충 내용을 추측하여 나랑 한번 같이 읽을 때 책 내용을 다 외워서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아이는 알파벳도 완전히 익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영국으로 오게 되었다. 9월에 개학인데 7월 초에 오게 돼서 시간이 많이 남아 동네 도서관에 회원가입을 먼저 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읽는 책부터 시작해서 점점 책 읽기를 늘려갔다. 아이가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했다. 유치원아이들 책을 어느 정도 다 읽고, 저학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기 나이에 맞는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 봉쇄조치가 이루어졌다. 한동안 도서관 문을 닫는다고 해서 책을 20권도 넘게 한꺼번에 빌려왔던 것 같다. 다행히 집에 책이 많이 있어서 몇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봉쇄가 풀리자 직접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것은 안되지만 서비스를 신청하면 그동안 우리 아이가 읽었던 책의 취향 및 서비스 신청서에 표시한 분야의 책가운데 다섯 권을 엄선해 놓고 픽업 알림 이메일을 보내오면 가져와서 읽곤 했다. 영국에 와서 시댁식구들 외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한데 도서관의 젊은 피터아저씨가 친근하게 아이에게 말을 걸어줘서 더 자주 도서관을 이용했던 것 같다.


아이가 5학년 생일을 넘기자마자 피터아저씨가 이제 B는 청소년 카드로 승급시켜 주겠다고 했다. 청소년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았는데 새로운 카드를 받아 든 딸아이는 좋아라 했다. 청소년카드는 웬만한 19금 책을 제외하고는 모든 책을 빌려볼 수 있다. 만 16세 미만의 회원은 켄트 전 지역 도서관의 책을 신청해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연체를 해도 벌금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연장을 해도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딸아이의 카드로 책을 빌려보고 있다. 딸아이가 만 16세가 되면 동네 도서관에 비치하고 있는 책은 무료로 빌려 볼 수 있지만 타 지역 도서관에 있는 책은 1파운드(1500원)를 주고 예약을 해서 빌려봐야 한다.


학기 중간 짧은 방학을 맞아 세컨더리에 들어간 뒤로 도통 책을 읽지 않는 것 같아 오랜만에 도서관 나들이를 했다. 책욕심은 있어서 다 읽을지도 모르면서 신나게 책 4권을 빼들었다. 옆 슈퍼에 다녀올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으라고 했다. 도서관엔 방학이라 부모님 손잡고 책 빌리러 온 아이들과 또 마침 할머니 다섯 분이서 뜨개질 모임을 하고 있었다.


여기 도서관은,

각종 도서모임, 사진모임, 뜨개모임 등을 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고,

어린아이들이 바닥에서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게 귀여운 카펫을 깔아놓았고,

컴퓨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간단한 작업을 할 수 있게 컴퓨터 3대가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특이했던 건 한 코너의 책장은 larg- print라고 적혀있는데 시력이 안 좋은 사람들을 위해 글자를 크게 인쇄한 책들을 따로 분류해서 꽂아놓은 것이다. 이 섹션은 영국의 어느 도서관을 가나 마찬가지로 한 코너를 차지한다. 아무래도 도서관을 찾는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여기 도서관 입구에는 출입관리시스템도 없다. 그냥 문 열고 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조용히 하지 않아도 된다. 그곳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은 없다. 그야말로 책을 빌려갈 수 있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아이와 내가 이 도서관을 이용한 지 4년 정도 된다. 그 사이 우리 둘이 빌려본 책은 천권이 훨씬 넘는다. 그동안 도서관을 참 자주도 드나들었다. 혹시라도 카드를 가져가지 않으면 직원이, '응, 걱정 마, 여기서 하면 되니까.'하고 바로 자신들의 컴퓨터에서 우리 이름을 찾아 책을 대출해 준다. 한국에선 카드가 없으면 빌려주지 않아 발을 돌린 경험이 있다.


여기의 도서관도 점점 변하고 있긴 하다. 어머님 동네의 도서관에 갔을 때이다. 대출반납기기가 한 대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건다.


'기계 있어도 여기 사서한테 가져다주고 빌려야 해. 안 그럼 여기 사서들 직장을 잃게 되거든. 우리가 저 기계를 거부하면 그만이야! 허허허!'


비용절감 차원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기도 하고 또 개관 시간을 점점 줄이고 있다. 우리 도서관도 월요일 휴관, 화수금 종일, 목요일 오후, 토요일 오전 개관으로 일주일 4일 종일 개관이 축소되었다. 그래도 도서관은 여전히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이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나중에 아이들 다 키우고 일을 안 하게 되면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해보고 싶다.


영화 Ladies in Lavender(라벤더의 연인들) 삽입곡

한국의 KBS Classic FM과 비슷한 BBC 클래식 라디오를 부엌에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는데 하루 걸러 한 번씩 나오는 곡이다. 멜로디가 참 사랑스럽다. 도서관에 드나드는 사랑스러운 백발의 Lady들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zcEiloGEfk

작가의 이전글 O! ABC 주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