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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25. 2023

수국 앞 망설임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할인점에 들러 여름 휴가지에서 쓸 세면용품들을 사가지고 나오다가 밖에 진열되어 있는 수국 화분에 눈이 갔다.


나는 수국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한 번도 심어본 적은 없다. 늘 남의 집 마당이나 정원에 심어져 있는 것을 부럽게 쳐다보기만 했었다. 너무도 소담한 푸른색과 분홍색 수국 두 종류가 화분 선반에 가득한 모습을 지나칠 수 없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격은 13파운드(약 2만 원). 일단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결국 망설이다 차로 가서 사가지고 온 물건을 트렁크에 싣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잠시의 망설임 뒤에 차문을 다시 닫고 할인점 앞으로 갔다. 가는 길에 이번주 와인 한 병 안 마시면 되지 뭐. 내가 시험감독 1시간 10분 하면 버는 돈인데 뭐... 사자 사! 그리고 그 앞으로 가서 푸른색과 분홍색 앞에서 무슨 색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다 우리 집 정원에 붉은색 계열의 꽃이 별로 없어 분홍색으로 골라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얼마나 행복하던지...


운전을 하고 집으로 오는 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 좋아하는 수국 화분 하나 사는데 뭘 그리 망설일인인가... 나이 오십 가까워 오면서 화분 그거 뭐라고 그거 하나 사면서 와인이 왜 나오며, 시험감독 시간수당까지 끌어들일 일인가... 괜히 처량해지다가 옆자리에 떡하니 타고 있는 수국화분을 보니 또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영국으로 오면서 소비를 아주 많이 줄였다. 일단 한국에서 둘이 벌다가 영국으로 와서 남편의 외벌이 월급으로 생활을 해야 하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고 웬만해선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애써 외면하며 살았었다.


5년 동안 커피숍에 간 횟수는 10번도 되지 않을 것이다. 늘 보온병에 커피를 싸가지고 다닌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고 당일치기 여행은 늘 샌드위치와 과일 등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식자재는 제일 저렴하게 파는 슈퍼마켓을 주로 이용한다.

내 옷은 거의 사지 않고 언니가 물려주는 옷을 입는다.

대부분 도서관을 이용하고 필요한 책은 중고서점에서 구입한다.

아이들과 시내쇼핑을 나갈 때는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에 무료주차를 해놓고 걸어간다.

커피나 와인은 보통 15~25% 정도 할인되는 것들을 사뒀다가 마신다.

냉장고나 냉동실에 음식을 쟁여놓지 않고 먹는다.

건조기를 최대한 쓰지 않기 위해 일기예보를 보고 있다가 햇볕이 나는 날에 빨래를 하여 밖에 넌다.


이렇게 절약해서 우린 몇 년에 한 번 한국을 방문해야 하고,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을 때 최대한 여행을 다니려 노력하고 있으며, 아이들 대학교육을 학자금대출 없이 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 내가 오늘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수국을 사는데 망설이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원에 자리를 골라 심고 나니 푸른색 수국 화분이 눈에 밟힌다. 역시 소비는 소비를 부른다는 말이 맞는 말인 듯하다. 하지만 이제 방학이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서 그 할인점에 당분간은 갈 일이 없으니 푸른색 수국은 내년에나 다시 생각해 보기로 마음을 조용히 접어버렸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내 눈을 사로잡는 수국(Hydrang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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