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주키니호박이 작게 나온 것이 있는데 호박 위에 거의 닿을 듯 말 듯 싸놓고 갔다.
그리고 오이가 자라기 시작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오이덩굴 뿌리를 내린 곳에 똥을 싸놓고 갔다.
왜 내가 심어놓고 애지중지 가꾸는 채소 근처에 똥을 싸놓을까 생각하다가.... 빙고!!!
내가 장갑을 끼지 않고 가끔 호박이나 오이에 거름이나 흙을 북돋아 줄 때가 있었다.
그럼 다음날 여지없이 내 손이 거쳐간 근처에 똥을 싸놓고 간 것이다.
어제도 오이넝쿨이 더 잘 자라라고 흙을 북돋아 준 것이 기억났다.
내 냄새를 자신들의 고약한 똥냄새로 덮어버리려는 영역다툼의 도전장인 것이다.
어젯밤 9시경에 거실에 있던 남편과 큰딸이 여우 한 마리가 거실 유리문까지 가까이 와서 미동도 없이 자신들을 째려보고 갔다고 했다. 9시경이면 영국은 여전히 밝아서 다 볼 수 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오이에 똥을 시원하게 싼 직후에 의기양양하게 남편을 보며 해볼 테면 해보라고... 난 결코 이 집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째려보고 간 것은 아닐지...
딸아이의 말로는 여우가 전혀 아빠와 자신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마치 자기 집인 듯 유유히 정원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여우가 오는 것은 상관없다. 자신들도 점점 개발이다 뭐다 해서 서식지를 잃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의 정원이라도 들락날락하며 먹을 것을 찾아야 하고, 화요일 밤이면 축제하듯 집집마다 다음날 수거를 위해 내놓은 음식 쓰레기통을 헤집어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하필 내가 애지중지하며 민달팽이의 습격과 새들이 자리도 채 잡지도 못한 모종을 헤집어 놓다가 모종을 뽑아놓기까지 한 것들로부터 악착같이 지켜낸 나의 소중한 채마밭에 지독한 똥을 싸놓는 것은 참아주기 힘들다. 앞으로 무조건 장갑을 끼고 일을 해야겠다고 오늘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