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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18. 2023

화재 대피

B의 트라우마

수업이 있어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에 교직원 휴게실에 가면 제대로 쉬지 못해서 나는 가끔 내 차로 와서 뒷자리에 쿠션을 등에 대고 점심을 먹으며 책을 읽는다.


오늘은 도시락 싸기도 귀찮아 사과하나 싸가지고 와서 차 안에서 신발 벗고 편하게 누워 사과를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무 타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래서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 편한 신발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가보니 학생들과 교사들이 화재대피장소인 본관 앞 잔디밭으로 집결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건물 뒤쪽으로 엄청난 연기와 함께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주차장에서는 화재경보가 들리지 않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지를 몰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B가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잊지 못할 트라우마가 하나 있다. 그 트라우마가 우리를 여기, 영국으로 이끈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다. 2017년 봄, 어느 토요일 오후 남편과 나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웃 어르신이 다급하게 문을 두드려 일어나 보니 엄청난 산불이 났고 우리 동네로 번져올 것이라고 대피 명령이 내려졌으니 얼른 대피하라고 했다. 우리 넷은 얼떨결에 무엇을 챙겨나가야 할지도 모른 채 얼른 대피를 해서 경포호수 주차장으로 내달렸던 것 같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가깝게 지내던 아이들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것도 걱정 말고 애들 데리고 일단 자기네 집에 와 있으라고... 그렇게 우리는 그 친구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우리가 모든 것을 걸고 지은 집을 지키기 위해 3박 4일 동안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다. 아이들은 줄곧 친구 집에 있었지만 대피하는 날 집 근처의 산이 순식간에 타들어 가는 것을 보았고, 불길이 껑충껑충 다른 산으로 옮겨 붙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연기를 뚫고 달렸던 대피길이 너무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다행히 우리 집은 피해를 받지 않았지만 동네에 전소된 집들이 여러 채 있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인해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우린 잠을 잘 수도 없고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연기만 나도 그곳으로 가서 확인을 해봐야 그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특히 B는 어디서 연기만 나도 너무 불안해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지은 집, 우리의 보금자리가 더 이상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커가고 있고, 남편도 한국살이에 어느 정도 지쳐 보여 영국으로 가자고 결정하고 산불이 난지 1년 만에 우리는 영국으로 와서 새 터전을 이루었다.


B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결장소에 가니 벌써 아이들이 나에게 B가 저기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친구 품에서 눈이 뻘게져서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절대 남들 앞에서 우는 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울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얼마나 줬으면 이마에는 빨간 핏줄이 선명하고 눈도 빨개져 있었다. 담임에게 얼른 B가 가진 트라우마에 대해 설명하고 B를 무리가 아닌 좀 더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랬더니 괜찮다고 엄마 옆에 있지 않아도 되니까 엄마는 가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곳을 피해 다른 교사들과 함께 다음번 지시사항을 기다렸다. 곧 소방차가 와서 건물 뒤로 가더니 바로 나와서 교문으로 나가버렸다. 화재가 학교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학교 뒤에 철길에서 발생해 주위 나무에 옮겨 붙어 불이 난 것이라고 했다. 불은 한 시간 만에 다 꺼졌고 우리는 옆 학교 체육관에서 대피하다가 학년별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 각각 하교를 했다.


집에 와서 많이 불안하고 힘들었냐고 물으니, 엄마가 선생님들 무리에서 보이질 않아 더 불안하고 무서웠다고 했다. 결국 B는 내가 혹시라도 건물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까 봐서 더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소방대피 훈련을 주기적으로 한 효과인지는 모르지만 초기 화재의 원인이나 발생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전교생과 교사들 및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화재대피장소로 집결하여 반별로 교사의 인원파악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소방차도 화재경보가 울린 지 5분도 안되어 도착을 하였고, 학생들이 뙤약볕에 오래 서 있지 않게 옆 학교 교장과도 긴밀하게 협력하여 그곳 체육관으로 전체 이동을 시키는 등 아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놀라웠다.


B가 산불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는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겪은 강릉 산불은 그렇게 지울 수 없는 큰 흔적을 우리에게 남겼다. 봄마다 한국의 산불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도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온몸이 떨리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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