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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11. 2023

로빈슨선생님의 체육수업

개학 첫 주는 아무래도 교사들이 자리를 비울 일이 없어 커버수업 스케줄이 여유롭다.

그래서 매니저는 학교에서 수업 제일 잘한다 싶은 교사들 수업에 참관 스케줄을 짜 주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들어가 보고 싶은 수업이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체육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 번도 커버를 해보지 않아 궁금하다고 하니 마침 체육주임교사인 로빈슨선생님 수업이 있다며 2교시에 나를 그리로 배정했다.


체육관에 가서 새로 온 커버인데 당신의 수업을 참관하고 싶어 매니저가 배정을 해줬다고 하니 수업이 동시에 두 개가 진행되고, 본인이 맡은 수업은 두 반을 같이해야 해서 정신이 없긴 하지만 문제없다고 했다.


학생들이 이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하나 둘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한 학생이 체육복 폴로셔츠가 아닌 회색 면티와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들어왔다.

바로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체육관 밖으로 나가 서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두 반의 출석을 부르고 벤치볼을 하기 위해 학생들 그룹을 나누고 수업을 진행했다. 밖에서 벌을 서는 학생에게 반 친구들이 자꾸 가서 말을 시켰다. 끼리끼리라고 그 학생 친구들은 친구를  저렇게 밖에 세워놓기만 하는 선생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밖에서 벌을 서는 학생은 선생님을 째려보며,


"난 범죄자야. 그러니까 너희들 나한테 말 걸지 마.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를 범죄자처럼 밖에 세워두기만 할 건지....... 저 거봐 선생님은 나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나에게 말을 걸 생각도 하지 않잖아."


난 화가 났다. 뭘 잘못했는지를 정말 모른단 말인가... 신입생도 아닌 학교를 2년이나 다닌 학생이 자기만 빼고 모두 체육복을 갖춰 입었는데,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무조건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일단 우기고 보는 나이인지라 참으로 학생이 답답하고 안타까워 보였다.


수업을 어느 정도 진행시켜 놓고 선생님은 밖으로 나가 그 학생에게 체육복을 갖춰 입지 않으면 체육관에 들어올 수 없는 거 모르냐고 말하니, 그 학생은 자기 옷이 체육 하는데 뭐가 문제가 되냐며 도리어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선생님은 다음에도 그렇게 입고 오면 아예 수업에 못 들어오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학생을 일단 체육관 안으로 들여보냈다.


선생님은 나에게 자기는 2층에 잠시 다녀올 테니 애들 좀 봐달라고 했다.

잠시 뒤 체육관으로 들어온 그녀의 손에는 파란색 운동화 한 켤레가 들려있었다.

그 학생에게 다가가 운동화가 사이즈가 맞을지 모르겠다며 신어보라고 하니 학생은 못 이기는 척하며 신발을 신었다. 바로 그때 선생님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학생의 운동화끈을 매어주었다. 그때 학생의 표정에 변화가 보였다. 그동안은 계속해서 선생님에 대한 원망일색이던 표정이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감사함 등이 얽힌 울기 일보직전의 표정으로 변했다.

나도 덩달아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난 요즘 조금의 감동적인 장면만 봐도 눈물이 핑 돈다. 갱년기 증상인 듯하다. 선생님은 수업 진행하랴 학생 교도 하랴 정말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오늘도 이렇게 한 수 배우게 되었다.

학생들을 미워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어른으로서 혼낼 것은 혼내되 아무리 학생이 막무가내로 나와도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 나는 너의 선생님이니까...라는 태도를 보여준 로빈슨선생님이 대단해 보였다. 학교에서 괜히 유명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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