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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15. 2023

오이자!

악명 높은 9A(중학교 3학년)

커버 수업 배정을 받으면 아직 학생들 이름이나 반이 익숙지 않아 사진이 나와있는 온라인 출석부를 미리 훑어보고 수업에 들어간다.

커버수업은 반의 1/3은 선생님이 정해준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고, 1/3은 소란을 피우지는 않지만 하는 둥 마는 둥 과제를 어느 정도 하는데만 의의를 두고, 나머지 1/3은 과제는 전혀 건드리지도 않고 시끄럽게 떠들며 나머지 아이들을 방해한다. 커버수업은 담당 선생님의 진도와는 거리가 멀고 제대로 안 했다고 나중에 선생님에게 혼난다던가 무조건 마쳐야 하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은 커버수업을,  그리고 커버 교사를 얕잡아 보는 경우가 있다.


컴퓨터 수업-9A-오이자, 앤지, 데미, 페큘리아, 파와나, 밀리.... 학교에서 악명 높은 최악의 반이다.


데미와는 지난 학기 작은 눈 맞춤을 나누며 조금의 신뢰를 쌓았는데 나머지 아이들은 통제불능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컴퓨터 선생님이 배정해 놓은 좌석배치도를 화면에 띄우고 그대로 앉으라고 지시를 내린 뒤 출석을 불렀다. 그리고 좌석표대로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는데... 마음대로 앉은 아이들이 많았다.


"오이자! 네 자리로 돌아가 앉아. 지금 당장!"

"전 여기 앉아야 해요. 이비가 제가 없으면 불안해해서 수업을 못해요!"

그러면서 움직이질 않는다. 마침 다른 컴퓨터 선생님이 오늘 아이들이 자습할 내용을 알려주러 와서는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로 지시를 내렸다. 그래도 오이자는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선생님들만 액세스 할 수 있는 특별 주의가 필요한 학생 명단을 찾아보고는,

"이비가 그런 불안증을 겪고 있다는 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오이자는 당장 네 자리로 돌아가!" 그제야 거북이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그 아이를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만으로도 5분 정도를 소비한 것 같다.


그날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동안 배운 코딩으로 드라마, 책, 영화 등을 감상한 소감을 웹페이지로 만드는 것이다.  선생님이 드라마로 해도 된다고 했다고 프렌즈를 한 시간 내내 본 아이도 있다. 그리고 일찍 끝냈다는 핑계로 다른 아이들을 돕는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애들이 있었다. 난 여러 명의 아이들의 이름과 과한 행동들을 메모해 나갔다. 동시에 그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리고 중간에 수업을 중지시키고,


"자, 잘 들어봐. 새로 바뀐 학교의 벌점 시스템에 대해서 이미 들었지? 선생님들이 벌점을 마크하면 바로 부모님들도 볼 수 있다는 거 다 알 테고, 오늘 내가 같은 내용으로 두 번 경고한 학생들은 수업 끝나기 전에 벌점을 줄 거야. 본인이 잘 알 거야."


이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잠시 조용히 각자 할 일을 하더니 이내 또 소란스러웠다.

수업 내내 자기가 떠나온 자리에 미련을 못 버리고 방황하던 오이자가 갑자기 손을 든다.

"저 다 했어요. 한 번 보실래요? " 그리고는 설명해 나가는데 꽤 잘했다.

"거봐! 너 잘할 수 있는 애잖아. 너무 잘했어. 훌륭해. 다음부턴 선생님말 잘 듣고 이렇게 잘해. 너무 멋지다 야!"


그리곤 수업 종료 5분 전에,

"자, 집중! 오늘 내가 미리 얘기한 대로 몇 명은 벌점을 주려했어. 근데 그거 아니? 오이자에게 고마워해야 해. 오늘 오이자가 너희를 살렸어. 오이자가 과제를 잘 수행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오늘 벌점은 주지 않을 거야. "

그러니 아이들은 모두 오이자를 보며 박수를 쳤다. 오이자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이럴 땐 참 일심동체  말도 잘 듣는다.

그리고 나는 몇 마디 덧붙였다.

"내가 9월부터 커버교사 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어. 그전에는 필요할 때만 가끔 나와서 했던 거였고. 앞으로 잘해보자. 난 너희들을 믿어."

그러니 아이들은 모두 일어나서 "우와~축하해요 선생님!!!!" 그리고 박수를 쳐댄다.

 

며칠뒤 복도를 지나가는데 오이자가 반갑게 나를 보고 "Hi! Ms!" 하길래 반갑게 안녕하며 오이자 얼굴을 보는데 분명 나를 처음 봤을 때의 표정과는 매우 다른 친근함이 깔려있었다.  


중 3 나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아이들은 여전히

격려받고 싶어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주목받고 싶어 하고,

관심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이 받고 싶어 하는 것들을 나눠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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