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가려고 지인들과 다 약속을 잡아 놓으셨는데 엄마가 가끔 가는 점집의 아저씨가 별안간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는,
" 어머니, 올해 나가는 삼재이니 절대 장례식장엔 다니시면 안 돼요. 갔다 와서 괜히 고생하지 않으려면 꼼짝 말고 집에 계셔요"
한 달 전에 가까운 친척분이 젊은 나이게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셔서 엄마는 급하게 장례식장을 다녀오셨었다. 그때 장례식 다녀오자마자 감기 걸린 듯 몸이 으슬으슬 춥고 영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감기약을 처방해 주어 복용을 했지만 낫지 않고 더 심해지기만 했다. 그렇게 원인도 모르면서 몸져누워계시다가 혹시 몰라 한방치료를 같이 하는 병원에 갔더니 튀긴 음식에 아주 심하게 체해서 그렇다며 침치료와 약을 처방받으셨다. 그 뒤로 한결 나아지시고 곧 평소대로 기운을 차리셨다. 아무튼 그때 한 3주 정도 잘 드시지도 못하고 기운을 못 차리셨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무래도 그때 장례식장을 다녀온 것이 화근이 되었나 싶어 같이 점집도 다니고 절에도 다니는 친구이니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친구에게 전화로 설명을 하고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으시기로 하셨다. 이런 말을 들으면 왠지 그냥 듣고 무시해 버리기힘든 건 어쩔 수 없는 사람마음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무속신앙은 부모님, 남편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여자형제도 없고, 부모님 다 여의시고, 남편까지 일찍 하늘나라로 가버리는 바람에 누군가 옆에 의지하고 상의할 사람 없는 상황에서 4남매를 혼자서 키워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속 답답한 일이 있으면 한 곳 정해놓고 찾아가 이것저것 털어놓고 해결책 아닌듯한 해결책을 받아오면 그나마 길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기며 또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셨을 것이다.
가끔 엄마 따라 엄마가 찾는 무속인의 집에 가면, 그분께서는 늘 나를 가리키며,
'재는 한국에만 있으면 잘 안 풀리는 애야. 여기저기 다른 나라 돌아다니며 액운을 떨치고 다녀야 잘 풀리는 사주야. 그러니 그런 쪽으로 풀리게 정성을 잘 들이면 돼"
그래서 외국어를 전공하고 외국인 남편을 만난 것인지... 아님 그 아줌마 말 때문에 외국어를 전공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는 직장마다 해외 출장이 여기저기 잡혀서 많이도 돌아다녔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둘째가 그동안 쌓인 액운을 훌훌 털어버리고 오겠구나'라며 안심하셨으리라. 사실이라면 부디 내가 털어버린 액운이 그 누군가에게만 닿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