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튜브로 한국기행을 자주 찾아본다.
한국에서 시골에서 살았어서 그런지 한국기행을 보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한국의 들판, 산, 계곡의 모습과 냄새가 그대로 내 안으로 들어온다. 대학생 때부터 등산 모임을 만들어 다녔었던 일,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이 '한국에는 산이 많아?'라는 질문에 짧은 영어로 'mountain everywhere!'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남편도 산을 좋아해 서울 살 때는 주말마다 설악산, 오대산, 월출산, 북한산, 도봉산, 용문산을 다녔었다. 그래서 산이 그립다. 영국에서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북쪽이나 웨일스 쪽으로 등산을 간다. 그래야 타국생활에 쌓여있던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한국기행을 보면서 늘 꿈꾼다. 나중에 아이들 다 독립하면 지리산자락에 조그만 집 하나 구해서 아궁이에 불 때며 불멍 하다 밤엔 구들에 허리지지며 잠들고, 봄이면 산에서 이것저것 뜯어다가 마루에 걸터앉아 먼산 바라보며 밥 반 나물반 신나게 비벼 먹는 나의 호사스러운 인생후반을.
엄마는 한국기행보다 세계테마기행을 좋아하신다. 토요일엔 주중에 방송했던 4편을 모두 한꺼번에 방송해 줘서 놓치지 않고 챙겨보신다. 어쩌다 같이 볼 때면 엄마는, '아이고 저거 바라~ 야~참 멋있다! '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 엄마를 세계테마기행에 빠져들게 했다.
영국에 오셨을 때 아침식사 후에 늘 유튜브로 뉴스를 틀어들이고 세계테마기행을 보여드리면 뜨개질을 하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시면서도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tv 화면에 펼쳐지는 광경에 탄성을 지르시곤 하셨다. 80이 되시니 드라마나 영화는 이명 때문에 더욱 놓치는 부분이 많아 연결이 안 되어 잘 못 보신다. 그래서 굳이 듣지 않아도 풍경과 자막을 통해 이해하고 넘어가면 되고, 또 호기심이 많아 여행을 좋아하셨던 엄마에게 대리만족을 할 수 있어 여러모로 엄마의 최애 프로그램이 된 셈이다.
그런 세계테마기행스런 풍경을 선사해드리고 싶어 올해 영국에 오셨을 때 영국 백두대간의 시작점인 Peak District 국립공원의 Edale에 모셔가 비교적 등반 코스가 짧은 Mam Tor에 같이 올랐었다. Mam Tor 정상에서 멀리 패러글라이딩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넌 저거 안 해보고 싶니? 난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해보고 싶다'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캠핑카를 사서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경치 좋은 곳에 세워두고 맛있는 거 먹으며 유랑하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
이제 패러글라이딩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아이들도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엄마가 쓸쓸히 던졌던 그 말이 아이들 뇌리에 제대로 박힌 모양이다.
영국에 사는 딸은 한국기행을 챙겨보며 한국의 시골과 산을 그리워하고, 언젠가 어느 산자락에 자신의 자리를 꿈꾸고 있고, 한국에 있는 엄마는 산악회에서 해외여행 다녔던 것을 추억하고, 이제 하기 힘든 세계여행을 TV로나마 간접체험하며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