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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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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25. 2023

앞마당 잡초

레드로빈

내가 사는 곳은 중간 길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주택이 100여 채 정도 늘어서있다. 우리가 이 집을 구매할 때 전 집주인은 앞마당에 포장을 하려고 기존에 있던 정원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포장 전 자갈을 조금 깔아 놓고 집을 팔기로 결정하고 집을 내놓았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앞마당이 포장되어 있지 않은 집은 우리 집이 유일한 것 같다. 남편과 나는 가능한 집에 돈을 들이지 말고 살자고 했기 때문에 내선에서 앞마당에 잡초가 우거지지 않게만 관리를 해주려고 하고 있다. 왠지 앞마당이 지저분하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한 우리 집은 마당에 보도블록이 깔려있었고 조그만 화단이 있었다. 대문을 나가면 집 앞에도 듬성듬성 보도블록이 깔려있었지만 여름엔 가만두면 잡초가 사방에 자라곤 했었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오는 엄마눈에 잡초가 들어오지 않다가 어느 날 늦게라도 출근하시는 날 그 잡초가 엄마눈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엄마는 불같이 우리에게 화를 내곤 했었다.

'집 앞에 이렇게 풀이 우거지도록 계집아이들이 한가득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이거 하나 뽑지 않지 않고 뭣들 하는 거냐!' 그리곤 엄마의 푸념이 이어지곤 했다. 혼자서 동분서주하며 바쁜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에 대한 원망,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남편 없이 고생고생하는 자신의 신세한탄까지 더해졌었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얼른 밖으로 나가 풀을 뽑았다. 막상 풀 뽑는데 집중하다 보면 엄마의 푸념도, 하기 싫은 마음도 다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다 뽑고 호미를 든 채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집처럼 환해져 있었고 엄마의 푸념도 원망도 모두 끝이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서 애들 키우며 산다고 안 그래도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고 사는데 집마당에 풀까지 엉망으로 자라는 것을 남들이 보기라도 하면 더 자신을 깔보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앞마당에 잡초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집의 얼굴인데 집에 있으면서 그것 하나 깔끔하게 관리하지 못하냐......' 그러면 나는 호미를 들고 앞마당으로 가 주저앉아 풀을 뽑는다. 이 동네에서 호미 들고, 거기다가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는 사람은 나 혼자일 것이다. 영국사람들은 무릎을 꿇으면 꿇었지 쪼그리고 앉는 것은 못한다.


봄에 엄마가 다녀가시며 본인이 영국에서 본 정원수 중에 가장 맘에 들어했던 레드로빈(봄에는 푸른 잎이 빨간색으로 변해 마치 꽃이 핀 것처럼 화려함)을 한그루 사서 심어놓으셨다. 그 가장자리로는 뒷정원에서 중구난방으로 자라고 있던 수선화를 캐다가 쪼르륵 옮겨 심어놓으셨다. 그걸 보고 감정표현에 서투른 큰아이인데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 '할머니, 봄에 수선화 피면 할머니 생각할게요~' 라며 엄마를 안아주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앞마당에 심겨 있는 십여 그루의 다른 나무들보다 레드로빈에게 눈이 먼저 간다.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동물인 게 확실한가 보다. 그저 가든센터에 있던 것을 '저거 하나 가져다 심자!'라고 하는 말에 가져와서 심어놓은 게 다인데,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로는 레드로빈이 나를 줄곧 지켜봐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잘 자라고 있는 레드로빈과, 깔끔하게 정리한 앞마당 사진 한 장씩 찍어서 엄마에게 보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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