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니 화장도 좀 하고 신경을 쓰게 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피부화장보다는 눈화장에 공을 들이는 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얼굴 같아도 자세히 보면 마스카라는 꼭 하고 다니는 경향이 있다.
난 마스카라가 없다. 지금까지 마스카라를 사본적도 거의 없다. 딸아이는 마스카라는 꼭 하고 다닌다. 유독 흐릿한 눈매를 좀 강조하고파서 오늘 아침에
"나 너 마스카라 좀 해볼까?"라고 물었더니,
"엄마, 절대 하지 마! 마스카라는 공유하는 거 아니야. 그럼 눈에 염증 생겨. 절대 하지 마!" 기분이 살짝 상해서는
"야, 그럼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메이크업해 주는 연예인들은 다 눈에 염증 나겠다"
"엄마, 그런 사람들은 다 샘플 써. 당연한 거 아니야?"
왠지 모를 패배감이 몰려온다. 딸아이는 인터넷이나 학교에서 본 것은 신봉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일단 잔소리로 받아들이기가 쉽고 쉽게 믿으려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엄마, 과일바구니에 바나나를 같이 넣으면 다른 과일에서도 바나나 냄새가 나. 몰랐어? 따로 놔'
'엄마, 이 샴푸는 무슨 무슨 성분이 들어가 있어서 담부터는 사지 마'
'엄마는 피부과의사들이 권한 연고인데 왜 소용없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
어느 날 아침 엄마가 시금치를 삶고 계셨다. 바쁜 아침에 엄마가 펄펄 끓는 물에 시금치를 팍팍 삶고 있는 것을 보고 가정시간에 배운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 엄마에게 뭐라 했던 적이 있다.
"엄마, 시금치를 그렇게 끓는 물에 팍팍 삶으면 좋은 비타민들이 다 파괴된다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나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바쁜 아침에 도와주지는 않을 망정 뭣 좀 배웠다고 떠들어 대는 딸이 미우셨을 것이다. 그동안 엄마가 오랫동안 해오던 것들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무시당하고 부정당한 것 같았나 보다.
엄마는 초등학교만 몇 개월 다닌 게 학력의 전부이다. 그래도 혼자서 한글뿐만 아니라 한문까지 익혔다. 옛 소설 장화홍련 같은 책들을 좋아하셨었다. 초등학교 때 저녁 짓는 부뚜막에 엄마의 옛 책들이 놓여있었던 적이 있다. 한두 번쯤은 나도 엄마옆에서 불을 쬐며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엄마의 책 읽는 소리는 타령이나 시조 읊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렇게 책 읽는 법을 익혀서 그랬으리라. 도시로 이사 나와 먹고살기 바빠 손에서 책을 놓으시곤 지금까지 책을 읽지는 않으신다. 그래도 어디 여행을 가면 우리 딸들보다 안내표지판 같은 것은 더 열심히 읽으신다. 아직도 배움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있으신 게 틀림없다.
딸에게 마스카라로 한 방 먹은 아침 내가 엄마에게 시금치로 공격한 그날 아침이 떠올랐다. 시금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리고 나만 엄마에게 그랬을 리 없다. 엄마에게 대학교육받은 교사 딸들만 셋이다. 괜히 엄마에게 미안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