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영국에 오자마자 이것저것 기술을 익힌 뒤로 어설프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비슷하게나마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학교 갔을 때 심심할 할머니에게 카피바라동물을 떠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모양만 보고 코를 늘리고 줄이고 또 패턴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그렇게 할머니가 완성한 카피바라는 둘째에게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그 카피바라를 들고 학교에 간 날 아이들의 관심이 초 집중되었고 마침 그날 본시험을 아주 잘 봤다. 그래서 그 뒤로 중요한 시험이 있으면 카피바라를 꼭 가방에 넣어가지고 간다. 할머니의 응원과 사랑을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개구리를 학교에 가지고 갔는데 아이들이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날 개구리 네 마리를 주문받아와서는 뜨기 시작했다. 그런 손녀딸이 신기한 엄마는 둘째와 함께 그날 개구리 네 마리를 완성하고 늦게 잠들었다.
그 뒤로 딸아이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주문을 받아 코바늘로 각종 동물을 뜨기 시작했다. 딸아이도 엄마와 같이 모양만 보고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 엄마는 본인보다 손녀딸이 손재주가 더 훌륭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이다. 그리고 전화 통화할 때마다 둘째의 사업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듣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신다. 머리를 뒤로 젖히시며 웃으실 때가 많다.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코바늘 뜨기 언제 어떻게 배웠냐고. 그랬더니 남들 하는 거 어깨너머로 보고 익혔다고 했다.
시집오신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군대 가고 엄마는 집에 남는 실이 있어 코바늘로 문발을 떠서 걸어놓았더니 동네사람들이 구경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옆동네까지도 소문이 자자해서 시집갈 나이가 된 처녀들이 엄마에게 혼수품으로 가져가게 돈을 주고 떠달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것으로 돈을 벌어 엄마와 나이차이 많이 나지 않는 큰 조카 결혼식에 양복 한 벌을 해주셨다고 했다.
코바늘뿐만 아니라 뜨개질도 참 잘하셔서 어려서 니트, 바지, 장갑, 목도리, 모자 다 엄마가 떠준 것을 입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의 겨자색 니트티를 풀어서 내 바지를 떠 주셨다. 겨자색만 하면 너무 단순해서 바지 끝에 갈색으로 예쁜 패턴을 넣어 주셨다. 아직도 그 바지 끝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둘째 아이는 할머니가 가만히 앉아만 계시는 스타일이 아닌 걸 안다. 그래서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시는데 어느 날 검은실과 코바늘을 엄마에게 던져주고는 "할머니, 나 모자 떠주세요."
그리곤 나에게 와서는,
"엄마, 내가 일거리 안 주면 할머니가 게임만 하려고 해서.... 엄마가 왜 우리한테 그렇게 게임하지 말라고 하는지 알겠어. 할머니 게임 중독이야 아주!"
엄마도 안다. 손녀딸의 속내를. 그런 손녀딸이 너무나 귀엽다고 하시면서도 서로 티격태격하며 그 모자를 결국은 다 뜨셨고, 둘째는 외출만 할라치면 이내 그 모자를 쓰고 나갔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참 따뜻하다.
엄마 손가락이 아프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만 했었는데 손녀딸들을 위해 이것저것 구상하며 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 괜히 엄마를 위하는 척하며 엄마의 소소한 행복들을 차단해 버린 건 아닌가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