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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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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05. 2023

아침에 떠는 바지런함

메밀묵+빨래+애플타르트

토요일 밤, 남편에게 '나 내일 아침 늦게도록 침대에서 안 일어날 거야!'라고 말하니, 본인은 내일 일찍 일어나 아주 productive(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거라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했다.


지금 현재 시간 일요일 아침 9시, 남편은 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아직도 자고 있다.

늦게까지 침대를 떠나지 않을 거란 나는 아침 6시부터 책을 펼쳤는데......


.. 어제 담가놓은 메밀가루로 묵을 쑤어야 하는데.. 오늘 먹으려면 일찍 해서 굳혀놓는 게 나은데...

.. 날씨가 오랜만에 좋으니 밀린 빨래를 해야 하고...

.. 어제 사온 사과로 사과타르트를 만들라면 전에 만들어 놓은 페이스트리를 해동시켜야 하고...

온갖 일거리가 떠올라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불을 걷어차고 내려와,

커피를 내려 마시고,

아침으로 먹을 계란을 삶고,

메밀묵을 쑤고,

빨래를 두 번이나 돌려 밖에 널고,

사과 타르트를 만들고,

아침 주스를 만들고,

행주를 삶고,

음식물쓰레기를 정리했다.

 


엄마는 늘 바쁘게 일하러 나가야 하니 늦게 출근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뭔가를 하느라 늘 분주했었다. 그럴 땐 자면서 엄마를 원망했던 적이 있었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어서 말이다. 철없는 시절의 철없는 생각이었다. 그런 날이면 김치 두 종류가 떡하니 만들어져 있고, 아침밥과 도시락 반찬도 조금은 달라져있었던 것 같다. 늘 후다닥 해놓고 나갔던 엄마의 미안함이 잔뜩 묻어나는 아침이었었다.


난 엄마처럼 바쁘게 살지 않는다. 그런데 아침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이것저것 하는 습관이 생겼다. 영국에 와서 특히 그렇게 변한 것 같다. 다행히 영국 집은 이층 구조라 내가 부엌에서 아무리 큰소리를 내도 2층까지 닿지는 않는다. 접시라도 와장창 깨면 모를까......


나의 이 아침에 떠는 바지런함이 엄마에게서 온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빨래를 널고 오니 엄마에게 카카오톡 페이스톡이 와있다. 한국은 오후 늦은 시간, 밖에 어느 정도 어둠이 깔려있을 시간에 엄마는 내 생각을 하고,  오랜만에 비친 아침햇살 맞으며 빨래를 널고 있는 둘째 딸은 엄마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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