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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Dec 01. 2023

알리야와 수와드

한국어공부

학교에서 수업을 지도하기 시작했을 때 8학년(중2) F반에 들어갔는데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학생들이 묻길래 맞춰보라고 하니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Korean!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에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자신이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의 이름은 알리야이다. 그리고 그의 단짝 수와드도 같이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둘은 나이지리아 사람이고 무슬림이라 히잡을 쓴다. 


보통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지도 않고 중국인이겠거니 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영국에서는 어느 나라사람이냐고 묻는 게 매우 실례가 되는 질문이라는 것을 대부분 알고 선뜻 물어보지 않는다. 단순히 피부색이나 생김이 다르다고 무작정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으면 안 될 만큼 영국은 다국적국가의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살아왔고 그들의 2세, 3세들은 피부색이나 생김이 달라도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그냥 영국인이다. 혹시라도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싶으면 origin이 어디냐고는 조심스레 물을 수 있다. 아니면 이름이 영어이름 같지 않다고 운을 띄우면 알아서 우리 부모님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경우는 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지 않는다. 학생들이야 학교에서 인도인을 제외한 유일한 아시안 얼굴의 선생님이니 궁금했을 것이다. 그 뒤로 알리야와 수와드는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고개 숙여,

"잘 지냈어요?"라고 인사한다. 그럼 나는 아주 잘 지냈다고 활짝 웃어 보이면 아이들은 너무도 행복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어느 날 그 두 학생에게 내가 만약 점심시간에 한국어공부하는 클럽을 열게 되면 어떨 것 같냐고 하니 둘의 얼굴이 너무도 환해진다. 제발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부탁을 한다. 


어제 그 학생들 반에 수업이 있어서 들어가서는 수업 종료벨이 울리자마자 둘에게 다가가,

"오늘 기분 어때요?"라고 물으니, 알리야의 얼굴이 바로 얼어버렸다. '오늘'이란 단어에서 바로 막힌 듯했다.

그래서 오늘은 today라고 설명하니 바로 얼굴이 환해지며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좋아요'라고 대답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혼자서 한국어 공부를 한 노트를 보여주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페이지 빼곡히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제발' '어떻게 지내요'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 등등이 적혀있었다. 글씨도 얼마나 정성 들여 그림같이 써놨는지 아이들의 한국어에 대한 진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 아이들 반에 들어갈 때마다 한 가지씩은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의 하교시간이 곧 나의 퇴근 시간이다. 내가 퇴근하는 길에 항상 둘이 서있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가와서 고개 숙여 나에게 인사한다. "안녕히 가세요"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인사란 말인가! 

모두에게 타국인 영국에서 우리 셋이 이렇게 교감하고 즐겁게 서로를 기다리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오늘 둘째가 퇴근길에 차 안에서 말한다. "엄마, 나 그 한국어 공부하는 학생들 알아. 체육수업 같이했는데 내가 먼저 엄마가 Ms Lim이라고 했어." 웬일로 자기가 먼저 엄마가 누구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신기해하니 "엄마 그 애 둘이 엄마가 좋은 선생님이라고 얘기해 줘서 기분이 좋았어."


크리스마스 카드라도 보내고 싶은데 무슬림이라 안될 것 같고, 시간 날 때마다 작은 메모라도 건네주며 한국어 배우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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